해일이 오는데 조개 주워야 하는 이유
2017년 10월 6일
인도에서는 남편이 부인에게 화장실을 안 만들어주면 이혼 사유가 된단다. 올해 8월 20일 판결이다[1]. 이게 뭔 말인고 하니.
상상불가능으로 찢어지게 가난한 인도에서는 화장실도 사치인 곳이 많다고. 그래서 그런 곳에선 사람들이 밖 아무 데서나 용변을 보는데, 남자들이야 쉬하는 것도 쉽고 그렇다지만 여자들에게는 안전하게 용변 볼 곳이 없는 셈이다. 사람들 볼 수 있는 곳에서 대소변 보는 것도 안 되고, 외진 데로 가자니 위험해지고, 그래서 여자들은 보통 낮에 화장실에 안 가고 계속 참다가 밤에 간단다 (...). 밤에 가면 당연 신변의 위험이 더 커진다. 그러니 타인의 눈에 노출될 것이냐 성추행 성폭행의 위험을 감수할 것이냐의 문제. 그래서 '화장실'이 있느냐 없느냐가 엄청나게 중요하다고.
이 사건의 여자는 남편이 화장실을 만들어 준다고 해서 결혼했는데 몇 년이 지나도록 화장실 만들어줄 생각을 안 해서 이혼 청구를 했다고 한다.
다들 잘 알다시피 인도의 성차별은 그야말로 어마무시하다보니 서구나 한국의 안티 페미들이 페미니즘 욕할 때도 유용하게 쓰인다. 인도나 이슬람 그런데 사는 여자들은 그래 뭐 인정해. 걔네들은 불쌍하고 인권 박탈당하고 있지. 하지만 니네는 아니잖아? <- 딱 요렇게 말하는데, 그럼 과연 인도나 이슬람의 남자들은 그렇게 생각할까? 우리나라 여자들 정말 불쌍하다 여권신장에 힘쓰자? 설마.
화장실 얘기 읽고 보니 그쪽에서 무슨 얘기 나올지 안 봐도 비디오더라. 남자들은 그러겠지. 와 역차별이다! 여자들 진짜 별 유난을 다 떤다! 남자들은 그냥 밖에서 용변 봐도 아무런 문제 없고 불평도 안 하는데 여자들은 무려 '화장실'이 필요하대. 예전 시대 여자들이 화장실 요구하는 거 봤어? 요즘 여자들 완전 까져가지고 진짜 별 사치스러운 걸 다 바라네. 뭐? 강간? 아이구야 니 얼굴이 무기고 니 엉덩이가 무기다. 누가 너 똥 싸는데 강간한다고, 웃기고 있네. 그리고 좀 조심하면 될 걸 같다가 뭐 그리 유난을 떨어? 여자들 봐, 하여튼 꼭 특별 취급 원하고 이기적으로 자기네만 챙기고 남자들 생각 안 해줌.
물론 여자라고 다 여자 편드는 거 아니다. 어딘가에는 꼭 아줌마들 모여서 '별 걸 다 요구하는 젊은 여자들' 까고 있을 거다. "어디 사람들 앞에서 용변 얘기를 대놓고 해? 요즘 애들 진짜 까져서, 낮에 지 맘대로 화장실 가고 싶다고? 야, 난 별명이 천년의 변비였어!" "생리 얘기도 막 남편한테 하나 봐? 자기 생리할 때 불편하다고. 와 정말 신세대들 이해 못 하겠다. 어떻게 그런 말을 부끄럼도 없이 하지?" "화장실 안 지어주면 시집 안 온다니, 거 참 무서워서 아들 장가도 못 보내겠네! 딸 있는 게 벼슬이야!"
인도에서도 딱 "해일 오는데 조개" 얘기 누가 하고 있다는데 돈 건다. 우리나라 얼마나 문제가 많은데, 굶어 죽는 사람도 많고 전염병도 많은데, 고작 여자들 용변 문제 가지고 우리 지금 시간 낭비해야 합니까?? 이게 바로 역차별이라고요!! 남자들 힘든 건 생각 안 하고 지금 우리 여자들 위한 화장실 얘기 진짜 해야 하는 겁니까??"
그래서 결론. 가만있으면 어련히 챙겨줄까 해봐야 안 챙겨줘요. 절대 안 챙겨줘요. 우와 여자들 고생한다 소리 절대 그냥 안 나옵니다. 딴 나라에 비하면 얼마나 살기 좋은지, 전 세대에 비하면 얼마나 살기 좋은지 얘기만 나와요. 우르르 쾅쾅 푸닥푸닥 해야 합니다. 가만있으면 가마니로 봅니다.
- 그나저나. 인도 발리우드에서는 이 화장실 이슈로 영화를 만들었단다. 아내를 위해 화장실을 짓다가 마을 전체에 화장실을 지어준다는 로맨틱 코미디. 그러고 보니 한국에서도 '토일렛' 영화 나왔죠. 강남역 살인 사건을 살인범 입장으로 빙의해서. 그러고 보면 꼭 인도보다 나은 거 같지도 않음.
[1] 화장실 없음 이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