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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angpa Jun 15. 2018

여친에 대한 로망을 읊는 남자를 왜 걸러야 하는가

2017년 10월 5일

"긴 생머리 여자/도시락/우리 엄마와 잘 지내는 여친에 대한 로망이 있어" 란 남자를 왜 걸러야 하는가   

  

긴 생머리 여자 좋아할 수 있습니다. 취향이죠. 저도 롱코트 입은 멋진 남자 좋아합니다. 수트빨 있는 남자 좋아합니다. 그렇지만 '긴 생머리 여자가 여성적이고 매력적이다'와, 보통 남자들이 '로망이 있다'라고 할 때는 좀 다르죠. 까놓고 로망은 또 뭡니까. 지나가는 젊은 여자들 반이 긴 생머리인데. 뭐 되게 귀하고 그런 거 아니잖아요. '긴 생머리, 원피스, 하늘하늘 몸매, 보호본능 일으키는 여성성, 도시락 챙겨주고 오빠~ 하는 여성여성하는 여자' 이렇게 세트로 가니까 문제죠. 아니 사실 그런 여자 좋아할 수 있어요. 그게 나쁜 건 아닌데, 그렇게 여성성에 로망을 가진 남자와 결혼한 후가 문제입니다. (그 여성상에서 벗어나면 어떻게 되는지는 '결혼하고 변했어!'라 이를 벅벅 가는 기혼여성에게 문의하시면 됩니다!)     


Life happens. 

인생이 참 그렇죠. 벛꽃나무 아래 세라복 입고 분홍색 입술 살짝 벌리고 서 있는 청순한 긴 생머리 여성을 꿈꾸던 남자는 결혼을 합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여자도 방귀 끼고 설사하고 속 안 좋으면 트림하고 귀찮아서 샤워 안 하면 머리에 기름 낍니다. 여자도 발톱 깎아야 하고 때 밀어야 하고 머리 드라이 안 하면 골룸 같아 보일 수 있어요. 집에 있으면 추리닝 입고 티비 앞에서 뒹굴기도 합니다. 벛꽃나무 아래 순수한 그녀도 그런다고요. 

거기서 '환상이 깨진다' 헛소리하기 시작하면 곤란한데, 이게 점점 심해집니다. 누구는 생살 찢어서 애 낳고 있는데 그걸 보면 심리적으로 충격받아 고추 안 선다고 들여다보지 않는 이들부터, 애 낳고 머리 우수수 빠지고 얼굴 푸석한데 그 앞에서 자기관리가 어쩌고, 여자같이 않아서 어쩌고 헛소리 처하는 이들, 난 집에서 설거지하고 청소하는데 왜 너는 어지르냐고 잔소리하는 여자를 보면 정떨어진다는 인간들 다 처음부터 그런 건 아닙니다. 보통은 '긴 생머리의 청순한 여자 로망'부터 시작합니다. 그리고 생활에 찌든 부인 두고, 또 '긴 생머리의 청순한 여자' 찾으면서 환상을 불태우죠.     


직장 일에 찌들고 힘들어하는 남자들을 불쌍하게 봐주는, 자기의 일에 열정을 가지고 며칠 밤낮을 매달리는 남자에 대한 로망을 불러일으키는 신은 많지요. 반대로 어린애 키우느라 푸석푸석하고 옷 못 차려입고 애 토한 티셔츠 입고 소파에서 쪽잠 자는 여자를 멋있게 비추는 그따위 신은 없습니다. 아이 낳은 지 3분 20초밖에 안 되었는데도 비키니 입고 빅토리아 시크릿 런웨이 서는 여자들에 대한 환상은 많습니다. 열일 하느라 수염 안 깎고 옷 대강 입고 취재 다니는 기자는 멋있게 그려지는 씬 봤어도, 애 챙기느라 머리 안 감고 레깅스랑 슬리퍼 대강 끌고 다니는 여자는 절대 미디어에 멋있게 안 나옵니다. "이렇게 청순한데 애 엄마야?" 요런 건 많죠. '아줌마력 백 단이 완전 섹시!' 이런 건 별로.     


내가 원하는 젊고 예쁜 여자에서 내가 차지한 여자, 내 수발들어주는, 생활에 찌든 여자가 되는 순간부터 로망에서는 없어집니다. '평생 고생하신 어머니' 레벨로 격상되려면 한 삼사십 년 그렇게 살아야 합니다. 그 전까지는 자식 일에 유난 떠는 맘충, 치맛바람 일으키는 극성맘, 얼마 안 되는 거 깎으려고 난리치는 진상 아줌마, 정 떨어지게 억센 아줌마 코스입니다. 그녀들에 대한 로망은 없습니다.     

여자는 이슬만 먹는 게 아니라 나이도 먹습니다. 벚꽃나무 아래에 입 살짝 벌리고 긴 생머리 흩날리며 서 있는 것만 아니라 출근도 하고 살림도 하고 공부도 하고 화장실도 가야죠. 긴 생머리 로망으로 나를 좋아했던 남자는 도시락 로망으로 보살핌을 요구하고, 그 후에는 전통이 몇천 년간 잘 벼려놓은 여혐기계에 집어넣어 노동력을 갈아대고 외칩니다. 아, 여자로 보이지 않아. 내가 사랑했던 여자는 어디로 가고 이런 억센 아줌마만 남았지.     

죽고싶냐. 아주 뒤지는 수가 있다.     

...라는 욕이 나오죠. 네 뭐. 젊었을 때엔 로망 맞추는 거 어렵지 않습니다. 애교 부리는 거 뭐 돈 드는 거 아니고, '오빠오빠' 좀 해주면 오글거리긴 하지만 피부괴사 일어나는 건 아니죠. 해줄 수 있어요. 도시락 한두 번 싸줄 수 있고, 머리 그깟 거 기르는 거 그리 힘들지 않고, 원피스도 입어줄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거 평생 하실 자신 있습니까? 아이 울어서 밤새 시달리다가도 아침에 일어나서 말갛게 피부 표현하고 틴트 바르고 벚꽃잎 휘리리 뿌리실 수 있나요. 애 낳는 고통에도 혹시나 이거 보고 나중에 발기부전 올까 봐 밖에서 기다리라는 배려도 해주고, 혹시나 찌든 내 모습 볼까봐 집안일 요정이 되어 퇴근 전 청소 싹 끝내고 하늘하늘 원피스 입고 향수 칙칙 할 수 있나요. 네가 여자로 보이지 않아서 나는 딴 여자에게 끌린다는 개소리 듣고도 아, 맞아 로망이었는데 내가 못 맞춰줬구나 ㅈㅅㅈㅅ하실 수 있나요.     


그래서 거르라고 했던 겁니다. 긴 생머리 좋아하는 남자 괜찮습니다. 그러나 여성성에 대한 로망이 있는 남자는 정확히 어떤 로망인지, 최소한 여자를 같은 사람으로 보는지는 알아보셔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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