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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angpa Jun 16. 2018

케빈 스페이시와 게이 사회 내에서의 여혐, 성추행

2017년 10월 30일

고백할 게 있다. 사실 여성이 성추행에 대해 어떤 느낌인지를 보통 남자에게 완벽하게 이해시키는 데에는 "다른 남자가 너를 그렇게 본다면, 너를 추행하겠다면 어떻게 하겠느냐"가 직빵인 거 안다. 그렇지만 그걸 쓰는 것은 한국에 안 그래도 만연한 호모포비아를 악용하는 셈이라 쓰기가 힘들다. 그리고 안 그래도 소수자들로 여기저기서 얻어터지는 사람들을 여혐러들, 성범죄자들로까지 딱지 붙는 데 일조하기는 싫어서 웬만하면 나쁜 얘기는 잘 안 하는 편이다.     


그렇지만 개새끼 머릿수 평등 법칙. 소수자라고 해서 더 도덕적이지 않다. 여혐 역시 공기 같아서, 중년 여자들에게서 흔한 패턴 여혐이 있고, 젊은 남학생들 사이의 여혐 패턴이 있고, 게이 남자들도 당연히 자신들만의 문화가 있을 테니 거기에도 그들만의 여혐 문화가 있을 터이다. 이건 어느 문화, 어느 그룹을 가도 마찬가지다. 가난한 자에 대한 혐오, 장애인 혐오, 여혐, 맨박스는 무늬만 다르지 어딜 가나 있다. 개중에서 우리가 익숙하지 않은 문화의 혐오는 더 그로테스크하게, 더 변태스럽게 보이기 마련이다. 시댁 가서 여자들이 제사 준비하는 건 우리가 익숙하니까 별거 아닌 거 같지만, 다른 나라의 여혐 문화는 훨씬 더 나빠 보이듯이.     


케빈 스페이시가 30여 년 전 자신을 성추행했다는 남자 배우의 고백이 나왔다. 오스카를 두 번이나 수상하고 더 말할 필요 없이 정상급의 남자 배우인 케빈 스페이시를 공격하는 것,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나마 이번 하비 와인스타인 일 이후에 겨우 말을 할 수 있었을 게다. 이에 대해 케빈 스페이시의 반응? 생각 안 나지만 그랬다면 미안. 아마 술 취해서 그랬을 거야. 아참 글구 나는 게이야라고 커밍아웃하는 것. 

어우 야. 이 사람이 게이라는 루머가 수십 년이었다는데 자기 프라이버시 지킨다고 입 꽉 닫고 있다가, 14세 남자아이를 성추행했다는 주장이 나오자마자 커밍아웃. 30년 전과 지금은 정말 많이 달라졌다. 요즘에는 게이로 커밍아웃하면 다들 그동안 사는 게 힘들었지, 용기내서 말 잘했다 토닥토닥 분위기다. 근데 하필이면 미성년자 성추행했다는 얘기 나올 때 아 사실은 나도 몇십 년 동안 커밍아웃 망설였는데 나 게이야 흐흑 할 때는 아니지 않나.     


이성애자들의 사회에서 성추행, 성폭행은 엄청나게 흔한 만큼 게이 사회에서도 아마 비슷하리라 믿는다. 어쩌면 피해자가 훨씬 더 말하기 힘들 수도 있고, 더 성추행 등이 심할 수도 있겠다(그룹 내 문화는 잘 모르니까 그저 추측이다). 성소수자 정체성 자체를 도덕적 타락으로 보는 이들이 아직 많은 분위기에서, 그런 추문까지 더해지는 것은 나를 포함해서 많은 이들이 원하지 않으리라 본다. 그렇지만 이상적으로는, LGBTQ가 편견 없이 받아들여지는 사회였다면 약자인 그들을 조금 더 보호해야 한다는 책임감도 덜할 것이고, 피해자들도 소수자 그룹을 더 와해시킨다는 공격 없이 쉽게 말할 수 있겠지.     

그리고 케빈 스페이시. 요즘 커밍아웃하면 강력 보호 쉴드 쳐주는 분위기인거 알고, 미성년자 성추행을 그딴 식으로 '나 소수자인데 칠 거야?' 로 가는 거 정말 비겁하다. 성소수자인 거랑 아동 성추행/성폭행이랑은 완전 다른 문제잖아. 그런 식으로 한 문단에 두 개를 끼워 넣은 포인트가 뭐야, 게이라서 그런 거라고? 그런 분위기 조성하면 같은 성소수자들한테 얼마나 민폐인지 몰라서 저러나? 호모포비아들은 그봐라 걔네들 다 변태고 성범죄자고 어린애들에게도 마수의 손을 뻗친다고 입에 거품을 물 텐데.     

그리고 QED. 이렇게 증명된다. 소수자라고 해서 더 도덕적인 건 아니라는 거. 정체성이 뭐든지, 그것을 실드로 피해자 코스프레하는 건 어느 그룹에나 있고, 그런 자신 때문에 안 그래도 욕먹는 그룹들이 얼마나 더 힘들어질지는 고려 1도 없는 이들 있다는 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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