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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angpa Jun 16. 2018

케빈 스페이시 얘기 나온 김에

2017년 10월 31일

당신은 남자입니다. 이번에 해외파 실력파 엄청나게 대단하다는 사람의 팀으로 차출되어 갔습니다. 첫 회식에서 화장실 갔다 오는 길에 그 유능한 팀장이 술 취한 발걸음으로 당신 쪽으로 오더니 백허그를 하고 손으로 당신의 성기를 더듬었습니다. "뭐야, 작잖아? 야, 고추는 작아도 열정은 있지?" 당신은 순간 얼었습니다. "만져줘도 안 커지네? 고자냐? 너 나 싫냐?" 라고 그가 웃으면서 묻고는 떨어집니다. 이 모든 상황은 10초도 안 되어 끝났습니다.     

자, 당신은 어떤 선택을 합니까? 엄청나게 들어가기 힘든 회사였고, 거기에서도 들어가기 힘든 팀이었습니다. 회사에서 주목하는 팀이고, 유망한 프로젝트입니다. 거기서 당장 팀장 멱살 끌고 나올까요? 한 대 칠까요? 사람들한테 얘기할까요? 팀장님이. 나를 뒤에서 안으면서. 성기를 더듬고. 이런 말을 했습니다. 고추는 작아도. 열정은 있냐고. 만져줘도 안 커지네. 라고 했습니다. 그 말을 차장님께, 이사님께 할 자신 있나요? 사람들 앞에서, 징계 위원회 앞에서 또박또박 말할 건가요? 대자보에 써서 회사 앞에 붙일 건가요? 사람들이 믿어줄까요? 그 잘난 사람이 뭐가 아쉬워서 너한테? 유부남이고 미인 와이프도 있고 애들도 있는데 그 사람이 왜? 그 사람이 게이라고? 정말 그런 미친 짓을 했다고?     

당신은 그냥 취해서 그랬으려니 하고 넘어갑니다. 정말 많은 사람들이 그런 선택을 합니다. 당신 상관은 어디 가든지 인정받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그 일이 있고 나서 그 사람은 기억나지도 않는 듯 아무렇지 않게 대하고, 당신 역시 기억 속에서 지우기로 합니다.

     

삼 주 후, 또 회식이 있고, 또 술을 마십니다. 당신 상관은 다른 사람들이 다른 얘기로 바쁠 때 은근히 말을 던집니다. 너, 파란 셔츠 입으니까 몸 좋아 보이더라? 자주 입어라.     

이건 성추행인가요? 글쎄요. 하지만 당신은 소름이 쭉 돋았습니다.     

그 후로 지나가면서 한마디씩 합니다. 몸이 부딪힐 때도 있습니다. 엘리베이터 내릴 때 허리에 손이 닿고, 한 번은 엉덩이에 손이 닿은 적도 있고, 당신의 성기 부분을 빤히 바라볼 때도 있습니다. 당신 부서에서 당신 혼자만 불편합니다. 그러다 두 달 후, 술자리에서 또 성기 부분에 상관의 손이 스칩니다. "가만 안 있겠습니다"라고 낮게 협박하자 그는 느끼하게 웃으면서 "내가 뭘?" 이라고 합니다.

     

답답하죠. 죽이고 싶고요. 그냥 좀 느끼하게 쳐다볼 때도 무슨 의도인지 아주 뻔하죠. 하지만 말하기도 싫죠. 더럽고 불쾌하고 다 불 질러 버리고 싶고요. 안 믿어줄 거 뻔하고. 증거는 없고. 목격자도 없습니다. 사실 당신 자신도 다른 사람이 똑같이 얘기했다면 믿기 힘들 겁니다.     

어쩌다가 엉덩이를 만지는 것을 누군가가 봤다고 합시다. 그걸로 고발되나요? 술 취해서 실수였다, 엘리베이터가 복잡해서 그냥 닿은 거다 하면요? 네 말 한마디에 한 사람 커리어가 무너지는데, 잘 생각하고 말해라 헛소리면 너도 가만 못 둔다 하면요?     


케빈 스페이시에게 당했던 14세의 소년 얘기 봅시다. 어떻게 보면 별거 아니죠. 실제로 강간당한 건 아니고, 추행을 당했던 겁니다만 그때의 무력감은 30년 지난 지금도 그는 극복하지 못했습니다. 징그럽고 싫은데, 대단한 사람이라 어찌 덤빌 수도 없었고, 주위에 말해봤자 증인도 없고 믿어줄 사람 없고, 오히려 명예훼손으로 소송당하거나 매장당하겠죠. 그때 둘이 동등한 위치였다면, 그래서 뭐 이 새끼야 뒤지고 싶냐 하고 싸웠더라면 그렇게 오랫동안 트라우마로 남지는 않았을 겁니다.     


성추행하는 사람들, 보통은 권력의 질서를 알고 합니다. 내가 이래도 니가 어쩔 수 없다는 거 알고 하는 짓입니다. 하면 안 되는 사람 앞에서는 아주 잘 조절되는 성욕과 손이, 내가 건드려도 암말 못하겠다 싶은 사람에게는 막 나가죠.     

여자들이 말 한마디 하면 남자가 매장된다고, 꽃뱀 주의하라는 사람들에게 성희롱 상황을 여자 남자 바꿔서 생각하라 하면 절대 못합니다. 야동 설정으로 생각해서 "으흐흐 그래 주면 땡큐지" 이딴 식으로 반응합니다. 여자는 그들의 머릿속에서 성적 상대가 아닌 권력자가 될 수가 없거든요. 그래서 가해자를 남자인 상관으로 대신해야 (이성애자 남자는) 원하지 않는 성희롱이 뭔지 이해를 합니다. 문제는 여기에 호모포비아가 섞여서 -_- 그거랑 그거랑 같냐 얘기가 나오고 그래서 (여러 가지 동성애 혐오발언) 해야 한다로 새는 거고요. 동성애는 때려죽여야 할 변태 욕이고, 내가 여자 원하는 건 당연한 자연의 섭리고, 내가 원한다고 하는데 받아들이지 않는 여자는 나쁜 년이고, 남자인 내가 다른 남자의 욕망의 대상이 되는 건 구역질 나는 거고. 뭐 그렇게 자신에게 편리한대로 세팅 완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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