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11월 1일
한 남자가 공대 강의실에 들어왔다. 총을 들이대며 50명 정도의 남자들과 9명의 여자들을 갈라놓은 다음 남자들은 나가라고 명령했다. 그리고는 난 페미니즘을 상대로 싸운다고 했다. 너희는 여자고, 엔지니어가 될 거고, 다 페미니스트다. 난 페미니스트가 싫다. 그러고는 마구잡이로 쏘아댔다.
강의실을 나가서 복도, 식당, 다른 교실을 훑어보며 저격할 여성을 물색했다. 총 14명이 죽고 10명이 부상을 당한 후에 그는 자살했다. 희생자 중에는 4명의 남성도 있었다.
이 사건 후에, 강남역 사건과 아주 비슷한 말들이 나왔다. 그 남자는 그저 미친놈일 뿐이고, 여자라고 죽인 건 아니다, 그저 우연한 희생자라는 말. 이걸 여성혐오라고 보는 건 정치적인 의도고, 여성들을 피해자로 만드는 거라고. 그의 유서에서 페미니스트들이 내 삶을 망쳐서 죽인다는 말이 나왔어도 그랬다.
1989년 캐나다에서 있었던 얘기다[1]. 그 사건이 일어난 12월 6일은 캐나다에서 "여성에 대한 폭력을 기억하고 이에 대항하여 행동하는 날"(Day of Remembrance and Action on Violence Against Women)로 제정되었다. 그리고 -
"몬트리올 참사가 일어났을 때, 임신 중절 찬성 운동(pro-choice movement)이 한창이었다. 참사가 있기 6개월 전, 퀘벡 출신 여성 샹딸 다이글(Chantale Daigle)은 폭력적인 파트너의 손을 들어줌으로써 임신을 중절하지 못하도록 명령한 캐나다 대법원의 판결을 뒤엎어, 중요한 승리를 얻어낸 주역이었다. 참사는 남성 폭력을 근절하기 위한 여러 캠페인들의 원동력이 되었고, 국제적인 연대를 이루어냈다."[1]
쉽게 바뀐 곳은 없었다. 죄 없는 이들이 여자라는 이유로 살해당한, 너무나도 확실한 여성혐오 범죄도 무슨 피해자 코스프레냐, 이걸 왜 성대결로 만드냐는 헛소리 들어야했다. 지금 청와대에 낙태죄 폐지 청원이 23만이라고 한다. 드디어 데이트 폭력 관련법도 제정되고 있고, 디지털 성범죄도 '그냥 장난'이 아닌 범죄로 인식되어지고 있다. 이게 여성혐오고, 그로 인해 사람이 죽고 있다는 것을 목 터지게 ㅈㄹ하지 않았으면 거두지 못했을 성과다.
* 만약 일본에서 대학 강의실에 들어와 일본인은 다 나가라고 하고 한국인만 몰아서 쏴죽였다면, 그리고 "한국인 민족주의자들이 다 싫어서 죽이고 싶어"라고 했다면 어땠을까. 과연 혐한 분위기가 일조하지 않았다고 말할까. 그러니까 한국인들은 앞으로 입조심하고 살라고 할까. 한국인들이 평소에 행실을 잘 했으면 저런 미친놈도 안 나오지, 엔간했으면 저렇게 범죄까지 저지를까 했을까.
[1] 한글 버전: http://femidea.com/?p=475
영어 버전: https://en.wikipedia.org/wiki/%C3%89cole_Polytechnique_massac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