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11월 6일
기회만 되면 애들 꼭 안고 엄마가 너를 사랑한다, 너 때문에 엄마가 너무 행복하다 얘기해준다.
넘쳐나는 사랑을 주체하지 못해서, 정서적 안정감을 위해서 이런 건 아니고 내 오버 염려증 때문에 그렇다 (...). 십 년 전 영국 왔을 때 마들렌 맥캔 실종 사건 관련해서 아이들이 납치된 다큐 몇 개를 봤는데, 아이에게 "너희 부모님은 이제 너 안 사랑해. 너 찾지도 않잖아?" 이런 식으로 세뇌를 시켰더니 나이가 들어서도 부모를 안 찾게 되었다는 내용이 있었다. 그게 엄청나게 기억에 남았다. 그래서 아이를 낳고 나서 말을 시작했을 때 제일 먼저 가르친 게 엄마 아빠 이름, 나이, 그리고 집 주소. 나쁜 사람들이 납치할 수도 있다 이런 무서운 협박은 하기 싫으니까, 혹시라도 의심할까 싶어 엄마가 너를 엄청나게 사랑한다. 직장에서도 너 생각하면 행복하고, 집에 오면 네 얼굴 보는 게 정말 좋고 뭐 이런 식으로 간지러운 말을 매일매일 한다. 비이성적인 두려움인 건 아는데, 혹시 오늘에라도 납치되면 화난 엄마 얼굴 기억하면 안 될 거 같아서. (그러므로 밖에 나갈 일 없는 주말에 잔소리가 더 심하다 ㅋㅋ)
우리 집 아이들은 시크하다. 둘째가 말 늦은 이유가 '구구절절 말할 필요를 못 느껴서'가 크지 않을까 의심하는 이유다. 이번 주말에 사탕(롤리팝) 하나 먹고 있길래
"뭐 먹어?"
"롤리팝"
"무슨 맛 나?"
"롤리팝"
그치. 롤리팝은 롤리팝 맛 나지.
판다 군 어렸을 때 '바바'라고 불렀었는데 세 돌인가 됐을 때 판다 군이 -
"엄마 이제 바바라고 부르지 마. 난 이제 컸잖아."
"그럼 뭐라고 부를까? 허니는 어때?"
"엄마, 허니는 음식이야."
그치. 허니는 꿀이지. 꿀은 음식 맞지.
몇 년 전. 이집트 역사 읽다가 투탄카멘 왕이 어린 나이에 죽었다고 하니까 판다군 얼굴이 하얘지면서:
"핸드폰 생기기 전에 죽었어?"
음. 글치. 핸드폰 생기기 전에 죽었지. 비극적이야.
요즘 인생 성공했다고 느낄 때. 둘째가 화장실 가자고 할 때.
무려 네 돌 하고도 두 달이 더 지나서 기저귀 뗀 만두 냥. 화장실 가자고 할 때마다 와 나 얘 다 키웠구나. 이제 꽃길만 걷겠구나. 이런 날도 오는구나 흐흐흑 이런다. 아직 그 감격에서 헤어 나오질 못했다.
판다군. 만 일곱이 넘으니까 "내가 빨래 개고 컵 치울 때마다 다 적어놓을 테니까 엄마 아빠는 용돈을 줘" 란 말도 할 줄 안다. 아. 다 키웠다. 인생 성공했다. 판다군은 돈 모아서 핸드폰 살 거란다 (...) 뭐 하나 할 때마다 아주 열심히 적어두고 있다.
둘 다 커서 뭐 할지 모르겠다. 아들은 커서 마음껏 게임하고 싶단다. 만두 냥은 글쎄. 기저귀도 뗐는데 뭐든지 할 수 있어!! 유 캔 두잇!
나의 목표는 얘네들이 아무리 납치당해도 집 주소 알고 엄마 아빠 이름 알고 경찰서 가서 신고할 수 있는 깜냥 되는 거. 그거면 인생 성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