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yangpa May 27. 2018

혐오를 혐오로 받아치는 건 옳지 않잖아요란 질문에

2017년 11월 21일 

한남충, 싸튀충 등의 미러링은 나쁘지 않나요. 혐오를 혐오로 받아치는 건 옳지 않잖아요란 질문이 몇 개 있어서 한꺼번에 답.     


당신의 아버지는 알코올중독자로 당신과 당신 어머니를 상습적으로 구타합니다. 중학생인 당신은 아버지의 눈치를 보는 것이 일상화되어 있습니다. 언제 폭발할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언제는 퇴근하셨을 때 인사 안 했다고 두들겨 맞았고 다른 한때는 텔레비전 보다가 시끄럽게 웃는다고 처맞았습니다. 그러다가 어느 날은 왜 사내새끼가 쥐새끼처럼 눈치를 보냐며 얻어맞습니다. 아버지 기분에 따라 다릅니다. 쌍욕과 물건 던지기로 끝나면 그나마 다행입니다.     


당신에게는 누나가 있습니다. 누나는 최대한 아버지의 비위를 맞춥니다. 아빠 쟤가 원래 찐따잖아요. 아빠, 엄마는 그냥 무시해요. 아빠 일하시느라 힘드시잖아요 등등. 나름 살아남는 전략이겠죠. 그렇지만 누나의 그런 전략은 아버지의 폭력을 합리화합니다. 아버지가 폭력을 휘두른 게 아니라 당신이 맞을만한 짓을 한 것입니다. 어머니가 음식 간을 잘 못 맞췄으니 국을 뒤집어써도 쌉니다. 누나는 아버지 성질 알면서 왜 자꾸 그러느냐, 너도 같이 맞춰주면 되는 거 아니냐 합니다. 경찰에 신고해봤자 별수 없을 거라고, 가정폭력 이런 건 사건으로도 안친다고 합니다. 그냥 졸업할 때까지 입 다물고 비위 맞추고 살라 합니다.     


당신의 유일한 분출구는 친구들과 함께입니다. 우리 아빠 씨발새끼. 그 새끼는 아빠도 아니야. 뭐 그런 욕을 쏟아냅니다. 그 욕을 들은 선생님이 혼을 냅니다. 아버지한테 그러면 못써.     

네 맞는 말이죠. 그러면 안 되죠. 그렇지만 말입니다, 욕도 하지 못하고 얻어맞는 것을 분해하지도 못하면, 이겨낼 수도 없습니다. 고등학교에 가고 키가 크고 힘이 세져도, 아버지에게 한 마디 싫은 소리도 못해본 당신은 감히 때리지 말란 말도 못 합니다.     


어느 날 술 취한 아버지가 들어와 어머니를 또 구타하기 시작하고, 당신은 처음으로 말합니다. 씨발새끼야 그만해. 좀 그만 하라고!     

패륜이죠. 아버지한테 그러면 안 되죠. 그런데 지금 그 말 할 때인가요. 정녕 아버지에게 욕한 게 그게 제일 큰 잘못인가요. 아버지의 폭력과 구타와 폭언을 폭언으로 받아친 게, 지금 이 상황에서 그게 최고 잘못인가요.     

경찰서에 갑니다. 훈방조치 받습니다. 아버지는 더 난리 칩니다. 무엇이 방법인가요. 그냥 버티고 있다가 대학 잘 가면 복수하는 건가요. 누나처럼 어머니를 희생양 삼으면 되나요. 그게 살아가는 요령인가요.     




여혐 상황을 봅시다. 김치녀 같은 욕에 답하는 욕으로 한남충을 썼습니다. 혐오에 혐오로 답하는 거 옳지 않죠. 맞는 말입니다. 그런데 남자 상사에게서 성추행 성폭행. 싸튀충 남친 덕에 불법 낙태. 남친과 남편에게 폭행 및 살해. 일상적인 성추행과 디지털 성범죄의 공포. 어려운 취업과 유리천장, 경력단절 등으로 남편의 경제력에 완전히 기대게 되는 상황들. 게다가 정말 끔찍하게도 일상적인 온/오프라인의 언어폭력 중에 딱 하나, 온라인 언어폭력 하나 그대로 돌려줬습니다. 그런데 그게 지금 대한민국 현안에서 제일 중요한 문제인가요. 아니면 어차피 세상 이러니까 요령 있게 가해자들 비위 맞춰가며 살면 되는 건가요.   

  

위의 예로 돌아갑시다. 중학생 학생도 꼭 해결하려면 방법 있습니다. 경찰서 가서 얼마나 폭력이 심한지 구구절절 호소해 볼 수도 있고 학교에 도움 요청할 수도 있겠죠. 친척들이나 주위 동네 사람들에게 부탁하는 방법도 있겠네요. 그런데 이게 얼마나 현실적이라고 봅니까? 현실적으로 이 아이는 가해자에게 경제적으로 완벽하게 통제당하고 있고, 법적으로도 가해자에게 귀속되어 있으며, 육체적으로도 싸움이 안 됩니다. 

여성에게 사회도 그렇습니다. 대학이나 직장이나 교수 등 고위층 간부는 거의가 남자. 가해자는 권력이 있는 남자. 경찰도 별 관심 보이지 않고, 성희롱 스토킹 이런 거 고소했더니 #경찰이아니라_가해자인줄 해시태그 해프닝이 줄줄이 이어집니다. 많은 이들은 아직 경제권 쥔 아버지에게, 상사에게, 미래를 좌우하는 교수에게 휘둘리죠. 육체적으로도 게임 안 되고요. 그렇다고 여자들이 국회의사당을 점거한 것도 아니고 쿠데타를 일으키지도 않았고 남자 연쇄 살인을 하지도 않았습니다. 여자 깽단이 생겨서 밤마다 죄 없는 남자들을 죽도록 때리고 하진 않죠. 딱 하나. 온라인의 언어폭력에 대처한 이들이 몇 있었습니다. "야 이 씨발놈아 좀 그만 때리란 말이야" 라고요.     


그 욕지거리가 진정 제일 심각한 문제인가요, 아니면 오늘도 술 냄새 풍기면서 들어와 어머니를 때릴 아버지를 막아야 하나요. 자, 다시 패륜에 대해서 말씀해보세요. 그게 얼마나 나쁜지, 그런 말을 자꾸 하면 주위 사람들이 패륜아를 도와주지는 않을 거라고, 좋게 좋게 아버지에게 말해보라고. 다시 한 번 조언해 보세요. 아버지들이 다 나쁘진 않는데 왜 애비충이란 욕 쓰냐고, 일반화 하지 말라고 말해보세요. 아버지 문 두들기고 계십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여성의 자취방이 궁금하십니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