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12월 24일
보건복지부에서 아이 낳는 기쁨이 어쩌고 하면서 약파는 모양이다.
클로이 님은 싱글 입장에서 글을 쓰셨으니[1], 나는 경험자로 더하겠다. 재수 없음 주의.
내 조건은 사실 뭐라 투덜거리면 욕먹을 정도로 구색 잘 맞춰져 있다. 남편은 가사 육아 입댈 것 없이 나보다 더하고, 시월드에 시달릴 일 없고, 직장 고용 안전하고, 수입 충분해서 그야말로 돈지랄로 보육비, 가사 도움 다 갖다 발랐다. 난 출산하고 나서도 몸 상태가 아주 나빠지지 않은 축에 속하기도 한다. 그러니까 독박육아/가사 해당 안 되고, 경력단절 겪지 않았고, 나나 애들이나 건강 문제 크게 없고, 친정 시댁 찬스까지 썼다.
그런 나에게 아이를 낳을까요 묻는다면. 음.
돈부터 말해보자. 난 직장 일에 최대한 영향 가지 않도록 어린이집 + 도우미 + 직장 탄력 근무까지 3단으로 방어막을 쳤다. 거기에 든 돈과, 아이 없었으면 훨씬 적게 들었을 거주 비용이 더 든 것, 그리고 친정어머니 시어머니가 오신다 하더라도 아싸 가오리 공짜 노동이다! 이런 건 아니라서 그 비용 다 합해보니까 7년 동안 4억 들었더라. 한국 물가로 치면 2억이라 쳐도 너무 많은 것 같은가?
한국에서도 입주 시터 월급은 200 넘고, 그 외에 가사/비상 도우미 비용/ 봐주시는 부모님 용돈 월 50 더한다 치고 (가사 도우미만도 반나절에 4~5만원이다), 좀 더 큰 집에, 환경과 학군 좋은 곳에 살아야 하니까 집값 더 비싸고 그러므로 상환금도 더 높아서 월 50만 원 더한다 하면 300이라 치자. 그럼 일 년에 3600. 3년이면 1억. 기저귀값 분유값 병원비 그 외 시발비용은 넣지도 않았다.
이러면 닐리리야 편하게 직장 다닐 거라 생각하면 오산. 사람 구하고 시키는 것도 일이고, 애 아프면 병원 가고 하는 건 엄마 몫이다. 직장 빠져야 한다. 그러니 지랄지랄 돈지랄을 해도, 3년에 1억 돈지랄을 해도, 주말까지 혹은 24시간 내내 시터 쓰진 않을 거고, 싱글 때와의 삶과는 다를 수밖에 없다. 물론 이런 경우 보통 돈 2억 대신 여자를 전업주부화 해서 갈아 넣는다.
몸 얘기해보자. 난 산후풍 같은 거 없고 상당히 회복 잘한 케이스인데도, 회음부 3도 파열 있었고 그 후로 줄넘기를 못 한다(...). 머리숱 원래 없었지만 이젠 골룸 됐고, 피부는 기름이 쪽 빠져서 로션 안 바르면 각질 우수수 일어난다. 잇몸 내려앉았고 몸 전체가 어디라 할 것 없이 다 축 처졌다. 출산 한 몸은 어쩔 수 없이 다르다. 그나마 관절통 없으니 다행. 손목이나 허리 완전 나가는 사람 많다.
내 멘탈을 보자. 난 운 좋게 커리어는 계속 유지한 케이스지만 그렇다고 해서 스트레스 완벽 탈출은 아니다. 누구누구 엄마라는 것, 얼마나 많은 죄책감을 내포하는지. 얼마나 하기 싫은 것들도 해야 하는지. 얼마나 쉽게 '저 집 엄마는 왜 그래' 소릴 듣는지 아는가.
애들 때문에 가기 싫은 모임에 나가고, 머리 조아리고, 부탁하고. 맘충 소리에 완전 빡도는 것은, 옆에서 아무말 하지 않아도 나는 충분히 내가 뭘 잘못해서 그런가, 내가 뭘 더해야 하나 안절부절하고 있는데 뭘 모르면서 툭툭 던지는 말들 때문이다. "애들은 좀 막 키우고 그래야지 뭘 세제 같은 것까지 특별한 거 쓰고 그런 유난" 어쩌고 하면 해까닥 돈다. 내가 세제 하나 때문에 일 년을 잠을 못 잤다. 애는 피가 날 때까지 몸을 긁어댔다. 선크림, 피스타치오, 참깨. 얘가 예민한 거 하나하나 찾아내고 피하는 거, 당신은 나보고 유난 떤다고 하지만 난 얘 뒤집어지면 일주일 잠 못 잔다. 아 뭐 그래도 애가 울기만 해도 맘충 소리 들을 거 시발.
직장에서 잘리지 않았다고 커리어에 영향 안 받는 건 아니다. 아이는 손이 간다. 아무리아무리 돈을 처발라도, 완전 남에게 키우라고 던져버리지 않는 이상 시간이 든다(그리고 완전 남에게 다 맡기고 얼굴도 안 볼 거면 왜 낳나;;). 그리고 나는 싱글 동료들과 경쟁하기가 힘들어진다. 내 동료들은 주말에 취미로 코딩하는데, 나는 못 한다. 주중에도 애가 한 번 아팠다 하면 이삼일 말아먹는 건 일도 아니다. 늘 뒤처진다는 강박감에 시달리다가 어느 시기가 되면 포기하기도 한다. 그렇게 주저앉아버린다. 자존감도 같이 무너진다.
애 이쁘지. 많이 이쁘지. 인간 모든 DNA가 종족번식을 위해 최적화되어 있는데, 안 이쁘겠소. 마르크스가 종교가 민중의 아편이라고 했었는데 난 오히려 아이들이 그렇다고 생각한다. 애들 때문에 들어간 돈, 시간, 내 건강, 내 정신, 내 미래. 그런데도 그게 다 가치 있다고 믿게 만드는 인간 뇌의 신비. 하지만 겉으로 따지면 전혀 맞지 않는 계산.
거듭 말하지만 난 육아 시나리오 중에서도 상당히 괜찮은 시나리오다. 돌봄 도움에 돈 갖다 바르고 있고, 육아 도우미 가사 도우미 다 쓸 수 있고, 경력 단절 걱정 없고, 직장도 배려 많으며, 남편/시댁 뒷바라지도 필요 없는 경우. 아이들도 건강에 크게 문제 있지 않고 아토피 빼면 병치레도 별로 없었다. 그래도 룰루랄라 꽃놀이와는 거리가 멀다. 나도 나름 독하다는 소리 들으면서, 최대한 내 몸 편하게 이리저리 잔머리 굴리는데도, 그래도 쉽지 않다.
그런데 맘충 욕하기가 국민스포츠고 안 그래도 여자로 취업 힘들고 버티기 힘든데 게다가 경력 단절은 몇몇 직업 빼고는 확정이고, 독박육아 독박 가사 대리효도 그 외 여혐 릴레이인 한국에서 "야 니네 너무 이기적으로 굴지 말고 애 좀 낳아라! 애 낳으면 이뻐!" 말하기는 좀 부끄럽지 않나? 하기야 부끄러우면 저런 기사 냈겠냐마는.
[1] 클로이님 원 포스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