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yangpa Mar 23. 2018

왜 바로 고발하지 않았느냐고?

2018년 2월 4일

한국의 남자 유명인사에게 어린 시절 성폭행을 당했다는 남성이 있다고 하자. 두 명만 비슷한 얘기를 해도 전 국민이 믿어줄 거다. 남자가 왜, 뭐가 도움이 된다고 그런 거짓말을 하겠느냐는 의견이 주를 이룰 거다. 이걸 어떻게 아냐면 해외에서도 딱 그렇기 때문이다. 어릴 때 축구 코치에게, 선생님에게 신부님에게 성추행 성폭행을 당했다고 하는 남자들 중 그때 니가 꼬리를 쳤겠지, 옷을 좀 그렇게 입고 다녔겠지, 걔 보면 눈에 색기가 좀 있다, 요즘 애들은 발랑 까져서 먼저 들이대고 그렇더라 그런 말 듣는 이는 없다. 그렇지만 여자 피해자는 그런 얘기 듣는다.     


한 명의 여자가 입을 열면 증거가 되지 않는다고 한다. 서지현 검사처럼 보는 눈이 그렇게 많았어도 그렇다. 두세 명의 여자가 말을 해도 별 이슈가 되지 않는다. 미국에서는 최근에 150명의 여성이 증언을 한 래리 나사르 케이스가 있었다. 무려 90년대부터 쭉 최소 몇천 명의 여학생들을 성추행할 수 있었던 이유? 여자아이들의 말을 믿지 않아서. 고발은 꾸준히 있었다. 그렇지만 아무도 믿어주지 않았다. 150명이 증언을 하니까 이번에는 "그렇게 많을 리가 없다 이거 음모다" 란 개소리하는 사람까지 나왔다.     


당신은 해외에 취업한 남자 신입이라고 하자. 회사 사람들이 모인 자리에서 고참인 여자가 당신을 놀렸다. 여러분, 내가 쟤랑 비슷하게 생긴 애랑 잤는데, 진짜 고추 작아. 빨딱 서도 2인치밖에 안 돼. 새끼손가락! 게다가 토끼야. 난 옷도 다 안 벗었는데 혼자 막 쌌어.     

그러면서 깔깔깔 웃는다. 주위에 있는 사람들 다 웃는다. 같은 자리에 있는 남자들은 시선을 피하면서 미소만 짓는다. "신입 별명은 3초 토끼로 할까 2인치 차렷으로 할까"라며 멈추지 않는다. 우와 얼굴 빨개진 거 봐. 너도 좋지? 니가 고를래?     

자, 고참 여자는 정말 많이 잘못했는가? 뭐, 술자리에서 그냥 농담이다. 당신이 꼭 그렇다는 말도 아니고, 자신이 사귀었던 남자 얘기다. 그냥 웃고 넘어갈 얘기다. 신체 부위를 만진 것도 아니고 바지 까라고 한 것도 아니다. 예민하게 반응할 필요 없다.     


그럼 뭐가 그리 나쁜가? 서 검사의 일에서도 '엉덩이 좀 만진 거 가지고 뭘' 이라는 개새끼들 있던데, 다시 보자. 조직원들이 있는 자리에서 공개적으로 당신에게 성적 망신을 줬고, 당신의 동료들과 미래 선배들이 다들 당신을 흘낏 보면서 같이 웃었다. 그 말이 아무것도 아닌 듯이. 이제부터는 새로운 신입이라기보다는 작은 성기의 토끼로 불릴 텐데 그게 그냥 재밌기만 한 것처럼. 당신은 그렇게 무시 받아도 되는 존재였던 거다. 당신이 그렇게 망신당하는 건, 웃음거리밖에 안 되는 거였다. 그리고 당신 편 들어줄 사람은 없다. 엉덩이를 주무르는 건 '괜찮은 행동'이라는 동의를 그 모든 사람들에게 받은 셈이다. 앞으로 당신을 보며 클클거렸던 이들에게 보고를 해야 하고, 인정을 받아야 하며, 조직생활을 해 나가야 한다.     

이 사건을 그럼 고발할까? 고발하려면 당신은 어떤 말을 했는지를 서술해야 한다. 나보고 성기가 2인치밖에 되지 않고 3초면 사정하는 토끼라고 했습니다. 아주 또박또박하게 말해야 한다. 상대방이 피식 웃더라도. 그 얘기를 들은 사람들이 당신을 볼 때마다 큭큭 웃어대어도, 좋아하는 여성의 귀에 들어갈 수 있어도, 이 말을 몇 번이고 반복해야 한다. 고참이 했던 그 모욕을 내 입으로 반복해야 한다. 그리고 그 모욕에 내가 상처를 받았고, 화가 났고, 나를 그런 식으로 찍어 누르려는 노력이 성공적이었음도 고백해야 한다. 고참을 적으로 돌리며 그 자리에 같이 있었던 사람들을 다 나쁜 방관자 개새끼로 만드는 것은 덤이다.     

반대로, '그냥 농담이었음'으로 넘어가면 너무나 단순하다. 다음에는 그런 일 없겠지 바라면서, 술 취해서 헛소리 한 거겠지 하고 넘어가면 훨씬 더 쉽다.     


이런 상황에서 피해자가 바라는 상황은 복수나 처벌 보다는 '그 일이 일어나지 않았던 때로 돌아가기'이다. 내 상관이, 주위 사람들이, 생각하기도 싫은 그런 일에 연계되지 않은 그때로 복귀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아무 일 없었던 듯, 괜찮은 듯 애써 노력하는 쪽이 자연스럽다. 이게 그렇게 이해하기 힘든가.     


8년이나 지나서 말했다고 난리더라. 당신은 군대에서 부조리함을 겪었을 때 바로바로 국방부에, 혹은 최소한 상위에 보고했겠지? 안 그러고 제대하고 나서야 술 한잔 하면서 되씹는 건 아니겠지? 학교에서, 직장에서, 선배가, 상사가, 부당하게 대하면 곧바로 번개같이 문제 제기했겠지? 그런 일을 당했다는 사실 자체가 그 상황에서 약자였고, 강자는 그것을 아주 잘 알고 '니가 어쩔 건데?'라며 인격을 짓밟은 거지만, 그거 상관없이 '다른 사람들은 내 편 들어줄 거야' 룰루랄라 해맑게 믿으면서 곧바로 고발했겠지?     

아니야? 아닌데, 당신은 안 할 거지만 여자 검사는, 여자 의사는, 여자 사원은 당장 그 자리에서 따졌어야 한다고?     




페이스북 끊었는데 오랜만에 뉴스 보고 너무 빡쳐서 또 글 올리게 한 니 새끼, 저주하겠다.

매거진의 이전글 실드를 치다가 지능안티가 되어 슬픈 시인의 발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