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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angpa May 22. 2018

미친년/마녀 신화

2018년 2월 27일

Bitches be crazy라는 말이 있다. 남자에게 여친과 왜 헤어졌냐 하면 정말 자주 듣는 말이 she's crazy 인데, 한국에서도 비슷하다. 이상한 여자. 미친 여자. 여자들은 보통 왜 헤어졌는지 물어보면 (정당하든 그렇지 않든) 이유가 줄줄이 나오는데


남자들은 왜 crazy란 단어를 그리도 자주 쓸까 많이 궁금했었다. 남자들 어휘력이 좀 모자라서 그런 가란 일반화도 했었으나 그 후로 찬찬히 보니까.     

그 말을 하는 남자들은 여자가 자기 맘에 들지 않는 말을 하면 언어 이해력이 급히 떨어지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여자가 불만을 표시하는 것은 잔소리고 바가지 긁기, 뭘 모르는 투정, 혹은 삐짐으로 번역한다. 여자가 거절하는 거는 튕기는 거고, 여자가 화를 내면 신경질, 히스테리, '지랄'이라고 한다. 반대로 남자가 분노를 표현할 때에 사용하는 단어들은 전반적으로 다르다. 이건 한국어나 영어나 뭐 다 비슷하다.     


여성은 부드럽고, 사랑스럽고, 웃는 모습이 예쁘고, 남들에게 싫은 소리 안 하기를 바란다. 그런 그녀가 화를 내고 성질을 내면 미친 여자, 혹은 여자의 히스테리가 된다. 남자가 화를 내면 분노고 실력행사며 세력 다툼이 되어 어쨌든 '신경을 써야 하는' 해프닝이 되는데, 여자가 화를 내면 다들 무시해도 되는 히스테리다. 여친이 화를 내면 이해 안 가도 무조건 닥치고 사과하라는 조언도 사실 여자는 뭘 모르고 비이성적이고 '미쳤'으니 그냥 남자인 니가 비위 맞춰주라는 말이다. 남자가 화를 낼 때 다다다 따지면 처맞는다는 말 역시, 여성의 의견은 귀 기울여 들을 필요 없고 자꾸 귀찮게 하면 남자의 정당한 '분노'를 야기하며, 그러면 한 대 맞아도 된다는 말이다. 고로 여자의 분노는 받아들일 필요 없고, 남자의 분노는 이성적이고 그런 분노는 분출이 당연하다 뭐 그런.

     

그렇게 여성의 의견을 무시하는 태도는 특히 연애에서 극대화된다. 실제로 여성들은 그래야 한다 교육받기도 한다. (여기에서도 닭/달걀 중 뭐가 먼저냐 논리 나온다). 여성의 싫어요를 그들은 도전으로 받아들인다. 맨스플레인 하면 설득당할 거라 믿는다. 성관계 중 싫다는 소리 역시 무시하고 계속하면 결국 좋아할 거라는 메시지가 사회 전반에 넘쳐난다. 그리고 싫은 사람에게도 싫다는 표현 잘 하지 않도록 교육받은 여성들은 남자와 똑같은 강도로 분노해도 훨씬 더 제재를 받는다. 왜냐면 여자는 그러는 게 비정상적이고 이상한 상태니까. 

남자의 싸가지 없는 짓보다 여성 버전이 수십 배, 수백 배, 수천 배로 처벌받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건 남자들이 여성들을 대해 저지르는 일반적인 폭력도 아니다. 같은 여자도 싸가지 없는 여자를 더 싫어한다. 김보름 선수 논란 봐서도 알듯이 -_- 남자 팀에서 그런 일 있었어도 과연 60만 찍었을까? 과연 중세시절 마녀사냥을 오직 남자들이 했을까?     


그래서 문화를 바꾸는 데에 시간이 오래 걸린다. 난 미친 게 아니라 화가 난 거다. 난 삐져서, 생리 중이라 이러는 게 아니라 정당하게 불만을 제기하는 거다. 난 튕기는 게 아니라 시발 새끼야 제발 좀 그만하라고 쳐 죽이고 싶다고 말하고 싶은 걸 정중하게 돌려서 '싫습니다' 하는 거다. '여자니까 봐준다', '여자는 그래도 돼' 등등의 선의적인 차별부터 '못생긴 여자 열폭' '노처녀 히스테리'로 치부하는 저열한 차별까지, 다 지워버리고 그냥 사람1의 의견과 불만과 분노와 거부로 받아들여지는 데에는 정말 오래 걸릴 거다. 여성이 수십 명 성추행을 고발해도 못 들은 척 하다가 남자 둘이 나서면 '오 그런가 보다' 하는, 사람 미치고 팔딱 뛰게 하는 그런 세상, 그래도 바뀌는 날이 있으리라 믿고 기다린다. 사람 소리로 들어줄 때까지.     


+참고로, 남자들의 '무고죄 히스테리' 역시 이 맥락으로 이해 가능하다. 여자의 거절은 거절로 받아들이지 말고 도전해야 된다 교육받은 이들은 아마도 자신의 성경험 대부분이 여성의 거부 의사를 어느 정도 무시하고 밀어붙였을 테니 '헉 그럼 나도 강간범??' 움찔하겠지. 그러니까 그렇게 팔딱팔딱 뛰는 거겠지. 제발 사람 말 좀 제대로 듣고 싫다면 하지 좀 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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