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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라 Nov 18. 2019

겨울이 반가운 이유

내 맘대로 샤부샤부

 
 찬바람이 불기 시작하면 슬슬 겨울을 날 준비를 해야 한다. 우리 집은 1층인 데다 웃풍도 심하고 낡은 집답게 곳곳에 틈새가 벌어진 곳이 있어 유난히 날씨의 영향을 많이 받기 때문이다. 더운 여름도 문제지만 겨울이 더 매섭다. 문풍지를 여러 개 사서 현관문부터 벌어진 틈새를 잘 막아두고 세탁실은 바람막이용 비닐 커튼을 설치한다. 창문에 방한용 뾱뾱이도 바르고 커튼은 두꺼운 것으로 바꿔 달아아 냉기를 차단할 수 있다. 온수 매트에 물을 채워 다시 켜고 몸에 차고 다닐 수 있는 전기 가열식 물주머니도 챙겨 둔다. 구석에 넣어 둔 두꺼운 수면양말과 발을 막아주는 털이 북슬북슬한 슬리퍼도 꺼내 두어야 한다. 이렇게 해도 거실에는 추운 기운이 들어서 겹겹이 껴 입고 따뜻한 차를 계속 마시곤 한다. 갑자기 날이 추워지면 보일러 배관이 동파될 수도 있어서 헌 옷이나 수건으로 돌돌 싸서 미리 방지해 두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돈도 돈이지만 추위를 오롯이 맞아야 하는 낭패를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전에는 이런 준비를 할 생각을 하지 못해서 갑자기 눈이 오거나 기온이 영하로 떨어지면 낡은 보일러가 고장 나는 경우가 잦았다. 그럴 땐 냄비를 종류별로 다 꺼내서 급히 물을 끓여 씻기도 했다. 그렇게 겨우 씻고 나온 후에는 욕실 문을 열자마자 추위가 따갑게 다가와 나오자마자 비명을 지르며 이불속으로 다시 뛰어들곤 했었다. 아침마다 이불속에서 덜덜 떨며 서로 부둥켜안고 10분 정도는 몸을 녹여야 겨우 밖으로 나올 수 있었다. 굳이 좋게 생각하자면 덕분에 아무리 다퉜어도 다음날 금세 풀릴 수밖에 없긴 했다. 그렇게 추위를 버티다 한동안 텐트를 치면 그 속 안은 땀이 날 정도로 따뜻하다고 해서 그렇게도 지내봤는데, 효과는 정말 좋았지만 그 밖으로 나오지 못한다는 엄청난 부작용이 있었다. 텐트 안은 너무 안락하고 밖으로 나가면 입김이 나올 정도로 온도 차이가 나니 밥을 하러 부엌까지 가는 것도 큰 결심이 필요해졌던 것이다. 정말 배가 고픈데 나갈 엄두가 안 날 때는 텐트 안에서 음식을 시켜놓고 배달이 오면 서로 가위바위보를 해서 진 사람이 가지러 나갔다 오기를 하기도 했다.

 이런 웃픈 사연들을 거쳐 이 집에 5년 넘게 살다 보니 집과 계절에 맞게 준비하는 노하우가 생겼다. 최근에 큰 맘먹고 보일러도 새것으로 바꾸고 미리미리 준비를 해 두는 덕에 그 정도로 춥지는 않지만 역시 겨울은 겨울이라 냉한 기운은 어쩔 수가 없다. 그럴 때는 샤부샤부같이 따끈한 국물 요리를 해 먹으며 그 추위를 잠시라도 달랜다.

 알배추와 청경채, 팽이나 느타리버섯, 그리고 샤부샤부용 소고기 한 팩 정도만 사면 된다. 샤부샤부용 고기가 없으면 불고깃감으로 써도 되고, 알배추가 없으면 양배추를 써도 된다. 꼭 버섯이나 청경채가 아니어도 집에 남아 있는 채소로 있으면 있는 대로, 없으면 없는 대로 빼거나 더해도 된다. 거창한 재료는 넣지 않지만, 대신 육수는 신경을 쓴다. 표고버섯, 다시마, 건새우, 북어포, 마른 멸치를 넉넉하게 넣고 편 썰기 한 마늘(다진 것도 괜찮다)을 더해 조금 진하게 육수를 우려낸다. 육수가 우려 지는 동안 채소를 씻어 적당한 크기로 썰어주면 준비가 끝나니 생각보다 엄청 간단한 요리이다. 가스버너 위에 냄비를 올려 육수에 맛술, 국간장을 조금 넣고 팔팔 끓이다가. 채소와 고기를 조금씩 넣어 익혀 먹으면 밖에서 사 먹는 맛 못지않다.

 함께 먹을 오이무침도 빠질 수 없다. 오이를 슬라이스 한 후 간장, 매실액, 식초, 고춧가루를 넣어 새콤달콤하게 무쳐준다. 소스 대신 찍어 먹어도 되고 채소나 고기와 함께 곁들여 먹으면 상큼하게 잘 어울린다. 오이가 싫거나 없으면 양배추나 양파, 풋고추 등으로 대체하여 채 썰어 넣어도 좋다.

  따끈하게 후후 불어가며 고기와 채소를 정신없이 건져 먹다 보면 어느새 추운 기운은 사라지고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맺힌다. 배가 불러 남은 육수가 아깝지만 도저히 먹을 수 없을 땐 다시 한번 팔팔 끓여 체에 거른 뒤 다음 날 남은 채소를 다 때려 넣고 수제비로 끓여 먹기도 한다. 떡국떡이 있으면 떡국으로, 국수 면이 있으면 국수로, 찬밥밖에 없으면 밥을 넣어 죽으로 끓여 먹어도 된다.

전문점에서 정갈하고 예쁘게 차려서 먹는 것도 좋지만, 집에 있는 재료로 내 입맛에 맞게 푸짐하게 먹을 수 있어서 언제부터인가 샤부샤부는 밖에서 사 먹는 음식이 아니라 겨울이 오면 생각나는 우리의 집 밥 메뉴가 되었다. 특히 겨울의 추위뿐만 아니라 여름의 무더위 또한 온전히 느껴지는 우리 집에서는 겨울 한정 요리이다. 긴 겨울도, 귀찮은 월동준비도 잠시 잊고 찬바람이 조금은 반가워지는 이유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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