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몇 년 동안 아동요리 강사로 일하는 동안, 우리 집 냉장고에는 항상 양배추가 있었다. 채소를 싫어하는 아이들이 조금이라도 친근하게 느낄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거의 대부분의 요리에 파프리카와 양파, 양배추 등을 넣었다. 그중에서 양배추는 이상하게 양 조절이 잘 안되고 늘 남았던 것 같다. 너무 작은 조각의 속 부분이나 너무 두꺼운 겉잎은 아이들이 다루기 힘들어해서 빼고 해야 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 집에서는 하루빨리 해치워야 할 식재료 중 하나였다.
양배추 샐러드, 양배추 쌈, 양배추 피클, 오코노미야끼, 캐비지 롤 나름대로 양배추로 해 먹을 수 있는 대부분의 요리는 해 먹어 봤다. 양배추에 한 맺힌 사람처럼 겨우 먹어치우면 그다음 주 수업에 또 양배추가 남았다. 뭐 먹을까 하고 냉장고를 열어 본 나는 양배추를 발견하고 한숨을 쉰 후 바로 다시 닫았고, 그런 나를 본 남편은 우리 집에서는 양배추가 자꾸 자라는 거 같다고 혼잣말을 하기도 했다. 애증의 양배추, 어떨 땐 사는 것보다 버리는 데 돈이 더 드는 거 같았다. 그렇다고 신선하지 못한 재료를 수업 때 쓸 수는 없으니 양배추 지옥 속에 빠져버린 것만 같았다.
그래도 질리지 않고 가장 자주 해 먹었던 것은 샌드위치와 토스트이다. 양배추와 함께 식빵과 계란 정도만 있으면 언제든 해 먹을 수 있어서 편하기도 하고 아침에 간단하게 먹기 딱 좋은 메뉴이기 때문이다. 양배추를 가늘게 채 썰어서 찬물에 담가 보관해두면 냉장고에서 일주일 정도는 갈변되지 않고 신선하게 유지된다. 그렇게 미리 준비해두면 재료를 썰 번거로움도 사라져서 편하게 쓰게 된다.
채 썬 양배추에 계란을 넣어 섞은 후, 버터나 기름을 두른 팬에 부침개처럼 부쳐낸다. 토스터에 구운 식빵 위에 한쪽 면에는 잼(우리 집엔 무화과잼이 있으니까)을 바르고 양배추 계란부침을 올린 후 케첩을 지그재그로 짜서 올린 후 다시 식빵을 덮어주면 길거리 스타일 토스트가 완성된다. 제대로 길거리 토스트 맛을 내려면 잼 말고 설탕을 뿌리면 되고 슬라이스 치즈나 햄을 추가하면 좀 더 비싼 맛이 된다.
샌드위치는 더 간단하다. 채 썬 양배추에 삶은 계란을 으깨서 넣고 마요네즈, 허니머스터드를 넣어 섞은 속재료를 식빵 사이에 채워 넣으면 완성된다. 피클이나 사과가 있다면 다져서 같이 섞으면 좀 더 상큼해진다.
이렇게 만든 샌드위치나 토스트는 남편 점심 도시락으로 유용하게 처리(?) 되었고, 가까운 곳에 놀러 갈 때 간식으로도 싸 가기 좋아서 억지로 먹어치우는 느낌을 피할 수 있었다.
허리 통증이 심해져 더 이상 짐을 들고 다닐 수가 없어 올해 초까지만 하고 요리 수업은 할 수 없게 되었다. 당연히 우리 집 냉장고에는 해치워야 할 식재료들이 사라졌고, 양배추는 어느새 따로 돈을 주고 사서 먹어야 할 신분이 되었다. 아침 식사 메뉴에도 샌드위치나 토스트는 등장하지 않게 되어버리니 새삼 아쉽고 그립다. 이제 양배추를 사게 되면 양배추 지옥이 아닌 파티를 열어야 되는 게 아닌가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