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상 세계에 대한 욕망
공상 세계를 만들고 표현하고자 하는 욕망은 생각보다 많은 이들이 가진 듯하다. 나는 어릴 적부터 특히 지도를 그리는 것을 좋아했다. 종잇장 위에 내가 상상한 지형, 교통망, 도시의 위치, 행정구역 등을 그려나가고, 기후, 식생, 문화, 사회 등을 설정하곤 했다. 이러한 취미는 나만 가진, 은밀한 취미인 줄만 알았으나, 의외로 이러한 취미를 가진 이들을 몇몇 만날 수 있었다. 유유상종이라서 그런 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흔히 일본을 '덕후의 나라'라고 많이 말한다. 그렇듯 일본에는 다양한 분야의 '덕후'들이 많은데, 역시나 나와 같은 '공상 지도 덕후'들이 있었다. 실제 시판되는 지도라고 해도 믿을 만큼의 정교함과 현실성을 갖춘 지도들을 모아둔 책도 있으니, 그 이름은 공상지도장 (今和泉隆行 (2023) - 空想地図帳). 최근 현지로부터 직구하여 얼마 전 받아볼 수 있었다.
수록된 공상지도들의 종류는 매체, 형식 등 여러 면에서 다양하였다. 리베 作의 '타카츠 시'는 수작업을 통해 제작되었다는 점이 숨막히게 놀라울 정도의 정교함을 보여주었다. 이외에도 구글 지도의 그래픽을 완벽하게 모작한 '토미이 시, 심지어는 쾨펜의 기후 구분을 활용한 가상의 기후도까지, 소개하고픈 지도는 무수히 많았다.
책의 후반부에는 지도를 제작하는 방법을 일종의 교재처럼 우려낸 부분이 특히 인상깊다. 이렇게까지 지도에 진심인 이들을 보았다. 어릴 적, 가슴 속에 품었을, 어쩌면 지금까지도 가슴 한 켠에 품고 있을 공상세계에 대한 욕망과 상상. 이를 섬세하게 표현해낸 이들의 놀라운 결과물들을 이 책을 통해 엿볼 수 있었다.
공간기록
살아가는 공간에서 가치를 찾고, 그 유산들을 기록해 나갑니다.
글 철사
사진 철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