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호원역과 주문진역―기차역은 죽어서 연석을 남긴다

호사유피(虎死留皮) 인사유명(人死留名), 그리고 역사유석(驛死留石)

by 철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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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남 판교역에서 문경행 고속 열차를 탔다. 사십여 분을 달리니 ‘감곡장호원역’에 이르렀다. ‘감곡’과 ‘장호원’, 두 이름이 붙은 역이었다. 감곡은 다소 생경하였더라도, 장호원만큼은 적잖이 눈에 익었다. 쌀이나 복숭아의 포장지 따위에서 볼 수 있었다. 하지만 또한 아득하였다. 왠지 모르게 기차로 갈 수 없는 곳은 내게 그리하였다. 감곡장호원역은 2021년에 들어섰다. 오래간 기차는커녕 기차가 다녔던 흔적마저도 없었던 탓이었을까? 그러나 이런 표현을 쓰면 아니 되었다. 장호원에는 정말로 기차가 다녔던 흔적이 있었으니까.


비록 장호원의 ‘철도 시대’는 짧은 시대이긴 하다. 1927년부터 1944년까지, 단 17년간에 불과하다. 1919년 천안역에서 안성역에 이르는 철도가 놓였다. 이 철도는 뒤이어 1927년 장호원역까지 연장되었다. 그러나 1944년 안성역에서 장호원역까지의 구간이 도로 폐선되었다. 철로를 걷어가서 재사용한다는 계획에서였다. 전쟁 수행에 있어 ‘덜 중요한’ 철도들이 철거 대상이 되었다. 이들을 ‘더 중요한’ 철도를 짓거나 고치는 데 재사용한다는 것이 계획의 골자였다.


장호원읍내 방향으로, 논두렁을 따라 걸었다. 쌀 포장지에서 ‘장호원’을 보며 연상하던 이미지와 같았다. 진하게 익은 벼들이 노란 벌을 이루고 자라 있었다. 벌은 군더더기 없이 너른 모습이었다. 그 어딘가에 철둑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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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둑과 도랑이 만나는 지점에는 다리 양 끝을 이루는 교대(橋臺)가 있었다. 그 너머는 눌리고 갈라진 아스팔트, 뒤이어 깔끔한 아스팔트의 신작로. 흔적은 옅어져 갔다. 아니, 숨겨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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잿빛 스레이트 지붕을 인 살림집을 보았다. 살림집은 플랫트홈으로 보이는 연석을 깔고 서 있었다. 장호원역은 죽어서 플랫트홈 연석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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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방의 또 다른 살림집도 보았다. 그 앞마당에도 플랫트홈으로 보이는 연석이 있었다. 아까 것보다 비교적 높은 것을 보아, 화물용이 아니었을까, 하고 감히 추측하여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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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에는, 강릉 주문진읍내를 걸었다. 지대가 높은 골목길에는 ‘철둑길’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그러한 읍내에 역시 플랫트홈 연석이 있었다. 양양에서 강릉을 잇는 철도가 개통에 이르지 못하고, 플랫트홈까지를 남긴 모습이었다.


호사유피(虎死留皮) 인사유명(人死留名)―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고들 한다. 다소 조악하지만, 역사유석(驛死留石)이라는 성어를 제안한다. 기차역은 죽어서 무엇을 남기는가? 연석을 남긴 것을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