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YSJ Jul 23. 2021

남미 여행 일지: 프롤로그(Prologue)




남미 여행 갈래?



전역을 앞둔 말년 병장이 흔히 그러하듯 진로에 대한 고민으로, 다가오는 전역날이 그리 반갑지만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친구 K가 함께 남미 여행을 떠나자는 제안을 했다. 나는 이미 이 친구와 해외여행을 다녀온 경험이 있고, 코드도 잘 맞았기에 제안이 매력적으로 느껴졌고, 떠나고 싶은 마음이 있었지만 거절했다. 당시 편입을 목적으로 공부하고 싶기도 했고, 여행 비용도 만만치 않겠다는 걱정에 온갖 핑계를 대면서 제안을 받을 때마다 얼버무렸다.


그토록 오지 않을 것만 같던 전역날이 찾아왔고, 무사히 군복무를 마쳤다. 편입에 대해 여러 정보를 수집하던 중 내가 편입을 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휴학 기간에 편입 공부할 목적이었는데, 한순간 모든 계획이 수포로 돌아가고 말았다. 마음이 붕 뜬 채 무의미하게 시간을 흘려 보내고 있었는데, 다시 한 번 여행 제안을 받았다.


“남미 여행 갈래?”

이번에도 빙빙 돌려가며 거절을 하려는데, 이어진 말이 내 마음을 흔들었다.




우리가 또 언제 남미 가 보겠어. 지금 아니면 남미 갈 기회는 아마 없을껄?



생각해 보니 맞는 말이다. 학교 졸업하면 취업 전선에 뛰어들어 정신이 없을테고, 취업에 성공한다고 해도 30일이라는 시간을 따로 내서 여행을 떠난다는 건 불가능에 가까운 게 현실이다. 직장과 여행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는 건 대한민국 사회에서 쉽지 않은 일이다. 여행을 떠나지 않고, 막연한 미래를 대비하기 위해 공부한다면, 분명 취업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한다고 해서 내가 행복한 삶을 살 수 있을까? 미래에는 지금처럼 불안하지 않으리라 장담할 수 있을까? 불현듯 떠오른 질문들은 머릿속에서 자꾸 맴돌았고, 이미 답은 떠올랐지만 선뜻 말하기 쉽지 않았다. 며칠 동안 생각이 생각의 꼬리를 무는 나날을 보내고, 드디어 확신이 생겼다. 남미 여행을 다녀온 사람들은 그렇게 좋았다고 말하는데, 얼마나 좋은지 직접 다녀와서 판단해보자고 말이다.


“좋지, 나도 남미 갈래”


그렇게 나는 남미여행팀 (남미여행계획수립실행발전준비회)의 마지막 멤버로 합류하게 되었다.







여행을 떠나기로 결정했으니 현실적인 부분을 고려해야 할 때였다. 남미여행에 필요한 여행 자금을 모아야 했다. 우선 군 복무기간에 들어 놓은 군 적금이 있었지만, 이걸로는 턱없이 모자랐다. 여행까지 남은 기간은 대략 5개월. 이 기간 동안 아르바이트를 해야 했다. 이미 2년 동안 군대에서 같은 작업만 기계처럼 반복했기 때문에 돈은 적게 벌더라도 여러 업무를 경험하며 사람들을 만나보고 싶다는 갈증이 있었다. 갈증을 해소하고자 여러 단기 아르바이트를 경험했고, 5개월 동안 34개의 알바를 하며 여행 자금을 마련했다. 내 여행의 시작은 어쩌면 8월부터 시작된 걸지도 모르겠다.


의류 매장에서 온몸에 먼지 뒤집어써가며 창고 정리를 했고, 각종 행사 운영 지원 스태프로 일하며 온갖 잡일도 했고, 신라호텔 웨딩 플라워숍에서 무거운 화분을 나르고, 손에 물 마를 새 없이 이른 아침부터 늦은 밤까지 일하기도 했다. 차디찬 겨울바람이 매섭게 불어 두툼한 롱패딩마저 무색하게 만들었던 2018년의 마지막 날까지 신년맞이 행사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2019년을 맞이했다. 각양각색의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재미있기도 했고, 땀을 흘려 가며 직접 여행 자금을 모았다는 사실에 자부심을 느꼈다.



인형탈 내부는 제법 따뜻했다.






2018.12.31 마지막 날까지 빅-알바맨은 아르바이트


아르바이트를 하면서도, 남미 멤버들과 만나 머리를 맞대고 여행 계획을 세웠다. 초반에는 막막했지만, 여러 차례 회의를 거치고, 숙박 및 항공권, 버스표를 예매하고 계획을 수정하기를 반복했더니 흐릿했던 남미 여행 계획도 점차 선명해졌다. 그렇게 정신 없이 시간을 보냈고, 어느덧 남미 여행까지 불과 12시간도 남지 않게 되었다. 여행 전날 밤까지도 배낭에 짐을 쌌다가 풀었다가를 몇 번씩이나 되풀이하다가 가까스로 짐 싸기를 마쳤다. 30일 동안 짊어지고 다닐 배낭을 바라보고 있으니 빵빵해진 배낭 크기만큼 뿌듯했다. ‘드디어 내일이다. 남미 가는 날이 오긴 오는구나..’ 하지만 떨리거나 설레거나 하는 감정의 변화는 없었다. 이상하리만큼 떨리지 않았다.



짐 챙기는 데만 4시간 정도 걸린 듯 하다.




[세부 정보]


<여행 기간> 

2019.01.08 – 2019.02.09


<여행 경로> 

리마~와카치나~나스카~아레키파~쿠스코~라파즈~우유니~라파즈~코파카바나~쿠스코~마추픽추~쿠스코~리마~아바나~트리니다드~바라데로~아바나~인천(귀국)


<여행 국가> 

페루, 볼리비아, 쿠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