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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SJ Jul 23. 2021

0. 출국

여행의 첫날이다. 드디어 떠난다. 내 몸집만 한 배낭을 짊어지고, 집을 나섰다. 모임 장소는 인천국제공항, 공항버스에 몸을 싣고 창 밖을 내다봤다. 출근 시간이 조금 지난 시간이었음에도 도로에는 차량이 많았다. 이 사람들이 일상을 되풀이하는 동안 나는 새로운 세상을 경험하고 있겠지? 헤헤 기다려라 남미. 잘 있거라 한국이여! 


그런데, 흔히 여행 떠나기 전날 설레서 잠을 못 잔다거나 여행 당일에 여러 감정이 교차한다고 말하던데, 나는 오히려 덤덤했다. 모임 장소에서 친구들을 만났을 때조차 빨간 버스 타고 서울 나들이 나가는 것처럼 감정의 변화는 전혀 없었다. 남미가 아닌 동네 마실 다녀오는 것처럼 말이다.








오전 10시 50분. 모든 멤버가 약속 장소에 모였고, 대한항공 체크인 데스크로 향했다. 티켓 발권을 위해 여권을 제출하고 위탁수하물을 부치려고 하는데, 안내데스크 직원은 어디론가 전화를 걸더니 심상치 않은 분위기 속에서 대화가 이어졌다. 수화기를 내려 놓은 직원은 우리에게 이렇게 말했다.


“고객님들께서 탑승하실 항공편에 시스템 문제가 발생해 수하물 서비스를 이용하실 수 없으십니다.”

“예…?!”


상당히 당황스러웠다. 우리가 인천에서 리마까지 가는 경로는 인천~파리(대한항공), 파리~마드리드(이베리아항공), 마드리드~리마(라탐항공) 이렇게 나뉘어 있었다. 아무래도 중간에 경유하는 과정에서 문제가 발생한 모양이었다. 이로 인해, 우리는 무거운 배낭을 들고 비행기에 탑승해야 했고, 환승할 때도 짊어진 채로 다녀야 했다. 여행하다 보면 예기치 못한 상황이 일어나기 마련이지만, 이렇게 일찍 찾아올 줄 몰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긍정적으로 생각하며 들뜬 마음으로 해맑게 사진을 찍었다. 앞으로 펼쳐질 파란만장한 사건들을 생각지도 못한 채 말이다.


비행기 타기 직전, 여권 모아 찍기는 해줘야지!



탑승 수속을 마치고, 출국 전 마지막 식사를 쉐이크쉑 버거로 해결했다. 장거리 비행을 앞둔 우리는 최대한 든든하게 먹어야 한다는 결론에 도달했고, 여러 선택지 중 햄버거가 가장 적합했다. 가격이 악랄하게 비쌌지만 그만큼 제 값을 하는 브랜드였다. 게다가 밀크셰이크는 어찌나 달던지 몽롱했던 정신이 번쩍 들었고, 에너지도 100% 충전됐을 정도였다.

 




탑승 게이트 앞에서 대기하면서 가족과 친구들에게 안부 인사를 주고받은 다음, 카카오톡 프로필 문구를 바꿨다.

2019.01.08~2019.02.09 남미


확인 버튼을 누르고 달라진 프로필을 보니 설레기 시작했다. 그동안 여행을 준비하는 과정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지난 5개월 간의 노력이 헛되지만은 않았구나.. 짐을 수하물 칸에 넣고 좌석에 앉아 숨을 크게 한번 들이쉬니 비로소 실감이 났다. 


목적지는 파리 샤를 드골 공항, 비행 시간은 12시간. 긴 시간 동안 좁은 공간에서 버틸 수 있을까 걱정스러웠다. 걱정도 잠시, 무제한으로 제공되는 와인에 영화까지 있으니 기나긴 비행 시간이 두려울 게 없었다. 영화 보고 기내식 먹고, 게임하고 다시 영화를 보고.. 놀고 먹고 쉬다 보니 어느새 도착을 알리는 방송이 흘러나왔다. 파리다!


와인을 무한으로 즐길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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