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ilogue
여행의 여운이 짙게 남았던 탓인지 남미에서 돌아온 후 약간의 우울함 때문에 오랫동안 고생했다. 불과 며칠 전만 해도 남미의 대자연을 누비며 새로운 것을 보고 듣고 경험하고 있었는데, 한국에 돌아오니 눈에 들어오는 거라고는 삭막한 고층 빌딩 숲과 단조로운 색상의 자동차들뿐이었으니 그럴 만도 했다. 경직되고 음울한 분위기 때문에 마음 한구석이 묘하게 불편했다. 게다가 여행하느라 미루어 두었던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 한꺼번에 몰려와 짓누르는 중압감에 갑갑하기까지 했다. 남미 여행을 다녀온 사람들의 이야기를 보면, 여행을 통해 미처 알지 못했던 자신의 모습을 발견했다던가 새로운 삶의 목표를 찾았다거나 삶의 원동력을 찾았다던데... 여행을 마치고 돌아온 나는 여행을 떠나기 전과 달라진 게 없는 듯했다. 32일간 펼쳐진 남미 여행이 그저 꿈처럼 느껴졌을 뿐이었다. 일주일 정도 여행의 후유증에 시달리다 새로운 일상에 적응하느라 정신없이 살아야 했다.
남미를 다녀온 지 어느덧 3년하고도 몇 개월이 지나고 나서 사진첩을 뒤적이며 여행기를 쓰다 보니 깨달았다. 남미 여행이 내게 가져다준 건, 술자리에서 한껏 흥에 취한 채 ‘내가 남미에 갔었을 때 말이지~ 이런 일이 있었는데~’하면서 말할 수 있는 이야깃거리만 있는 게 아니었다.
마음의 여유가 생기고 긍정적인 마음가짐이 더욱 강해졌다. 덕분에 무슨 일을 하기도 전에 걱정부터 하는 버릇을 많이 고칠 수 있게 되었다. 예전에는 문제가 생기면, 머릿속이 온통 걱정으로 가득 차서 스트레스는 스트레스대로 받으면서 정작 해결책은 찾지 못해 실수를 반복하기 일쑤였는데, 여행을 다녀온 다음에는 좀 더 침착한 마음으로 문제를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어려운 문제를 마주하면 ‘오히려 좋아!’ 하면서 좌절하기보다는 어떻게든 긍정적인 측면을 찾아내려고 하는 모습을 발견하게 되었다. 남미 여행을 하면서 워낙 다사다난한 일들을 겪어온 덕분인지 지금 해결하기 어려운 일이라고 해도, 언젠가는 잘 해결될 거라는 작은 믿음이 생겼다. 너무 여유로워진 탓인지 문제를 미루고 미루다가 시간에 쫓기며 부랴부랴 처리하는 경우도 종종 있었지만...
돌아보니 남미 여행을 통해 참 많은 것들을 배웠다. 그리고 그것을 충분히 내 것으로 소화하고 온전히 느끼는 데까지 제법 오랜 시간이 걸렸던 것뿐이었다.
누군가 남미 여행을 고민하고 있다면, 꼭 다녀오라고 말하고 싶다. 영상을 통해 간접적으로 보는 것과 실제로 직접 마주하며 오감을 통해 느끼는 건 말하지 않아도 다들 아는 사실이겠지? 물론 다른 지역에 비해 교통편도 복잡하고, 체력 부담도 큰 데다가 비용도 만만치 않게 들고, 치안도 좋지 않은 탓에 망설여지는 건 공감한다. 나도 그랬으니까. 기회비용이 상당히 큰 선택이라는 것도 당연히 안다. 하지만 오직 남미에서만 느낄 수 있는 대자연의 웅장함과 경이로운 잉카 문명의 정수, 화려한 볼거리, 남미 특유의 여유로움을 경험할 수 있으니 충분히 가치 있는 여행이 될 것이라고 확신한다.
지난 2년 동안 전 세계가 코로나 19로 인해 전례 없는 상황에 마주했다. 코로나 확산 방지를 목적으로 국경은 봉쇄되었고, 세계 곳곳에서는 지금까지도 코로나 확진자가 매일 속출하고 있다. 다행히 여행길이 다시 열려 해외 여행을 떠날 수 있는 날이 돌아오긴 했지만, 여전히 혼란스러운 시국이 이어지고 있다. 언제쯤 정상적인 상태로 되돌아갈지, 그리고 다시금 해외로 떠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질지 알 수 없지만, 자유롭게 여행할 수 있게 된다면 다시 남미로 떠나고 싶다. 한번 더 가면 더 재미있게 여행할 수 있을 것 같다. 그 날을 위해 일상을 여행하는 기분으로 충실하게, 즐겁게 살도록 노력해야겠다.
p.s. 남미 여행을 함께 다녀온 친구들에게 무한한 감사를 표한다. 멋있고 훌륭한 친구들 덕분에 정말 운 좋게도 남미 여행을 함께 할 수 있었다. 남미 여행을 통해 얻은 소중한 경험은 시간이 지날수록 빛날 거라고 믿는다. 심심할 때마다 혹은 여행을 떠나고 싶을 때마다 정성 들여 작성한 여행기를 읽으며 남미 여행의 순간을 음미해야겠다. 하하하하~ 인생의 25번째 페이지를 아름답게 그려낼 수 있어서 진심으로 감사하다. 그리고 지금까지 남미 여행 일지의 기나긴 여정을 함께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