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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v양쌤 Oct 13. 2022

닭 볶음탕이 나를 설레게 했던 날

지금은 비건 지향인이 되어 먹을 수 없는 닭 볶음탕


17년 전, 나의 연애 상대는 밀당의 고수였다. 모든 상황들이 내 마음과 같지 않아 마음고생을 한 적도 적지 않다. 자취방을 얻어 혼자 살던 나는 외로움을 많이 탔었던 터라 남자 친구와 함께 보내는 그 시간이 좋았다. 나를 위해 헌신하는 스타일이 아니었던 그에게 무언가 기대를 하지도 않았었다. 나의 20대의 연애는 서툴러서 마음을 표현 한다는 것을 자존심 상하는 일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말하지 않으면 모른다는 것을 시간이 지난 지금에서는 너무도 잘 알고 있다.


어느 날 퇴근 후 집에 들어오니 맛있는 냄새가 곳곳에 퍼져 있었다. 주방으로 가서 냄비를 열어보니 닭 볶음탕이 먹음직스럽게 담겨 있는 게 아닌가,,, 쪽지도 함께 놓여 있었다. 밀당의 고수가 우렁 신랑이 되는 순간이었다. 당연히 감동은 배가 될 수밖에 없었다. 내가 가장 자신 있는 요리가 닭 볶음 탕이었고 가장 좋아하는 음식도 닭 볶음탕이었다. 언젠가 한 번 요리 방법에 대해 물어본 이유가 이거였구나 싶었다.


그런 밀당의 고수는 30대에 가까이 다가갈수록 나에게 헌신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지금은 그와 함께 이쁘고 멋진 딸과 아들을 낳아 네 가족을 이루었다. 결혼 전 보다 결혼 후 그에 대한 마음을 더 많이 알 게 되었다. 섬세하고 예민하지만 가정적인 남자인 것을 말이다. 평범하게 사는 게 힘들다고 하지만 감사하게도 평범하게 잘 살고 있었다. 그런데 지금으로부터 3년 전 나는 비건 지향인이 되기로 결심했었다. 그런 뒤로 사랑하는 가족과 함께 공유하는 음식들이 줄어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두 종류의 식탁이 되어버린 지금, 과도기를 겪고 있는 중이다.


지금은 먹을 수 없는 닭 볶음탕이지만 마음 살랑 거리게 설레게 했던 추억 속 음식이 되었다. 함께 나누고 즐기지 못하는 음식이 되었지만 신랑이 좋아한다면 언제든 해줄 수 있는 음식이고 함께 앉아서 나눌 수도 있다. 맛을 공유하지 않는 것뿐이다. 생각해 보면 함께 먹는 음식에 대한 맛을 꼭 공유하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한다. 우렁 신랑 이벤트 때도 비건 지향 전에 먹었던 닭 볶음탕도 맛을 공유하지는 않았다. 맛보다 함께 하는 그 사람과의 이야기를 공유했다. 그 스토리가 기억에 남아 추억이 되는 경우가 더 많았다. 맛은 그냥 각자 느끼면 된다. 이것이 비건 지향이 논 비건 신랑과 함께 잘 지낼 수 있는 방법이며 설렜던 추억은 아름답게 나의 마음속에 여전히 남아있다는 것이 중요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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