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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만재 Aug 05. 2020

우리 엄마는 글을 모른다

글쟁이 딸이 쓰는 문맹 엄마에 대한 이야기

#1 괜찮아요, 엄마.


엄마가 글을 못 쓴다는 걸 알게 된 건 언제였을까. 아마 엄마가 나에게 "이름을 쓰기가 두렵다"고 말한 때였겠지.


초등학교 4학년 중퇴. 우리 엄마의 최종 학력이다. 외할머니가 돌아가시고 나서 7남매 중 위로 오빠만 셋을 둔 넷째이자 장녀였던 우리 엄마는 그때부터 집안 살림을 책임져야 했다. 이후 40년 넘는 세월 동안 엄마는 뒷바라지가 일상이었다. 오빠들, 동생들, 결혼하고 나서는 남편과 딸자식 네 명을 위해 헌신했다. 연필을 잡는 건 꿈도 못 꾼 채, 엄마의 인생은 희생으로 채워졌다.


네 자매 중 막내로 태어난 나는 유복하지는 못했지만 많은 특혜(?)를 받으며 자랐다. 엄마는 언니들과 터울이 있는 내게 옷도 새로 사줬고 치킨을 시키면 닭다리 한 개는 꼭 내 몫으로 따로 덜어줬다. 그렇게 엄마의 내리사랑으로 내 머리가 커갈 때쯤, 엄마는 나에게 "글씨를 배우고 싶다"고 말했다.


내게는 사소한 몇 글자도 엄마는 쓰기가 두려운 사람이었다. 은행에 가서 서류를 작성할 때, 모임에 참석해 방명록을 남길 때, 이름 석 자도 겨우 적을 만큼 글씨를 쓰는 일이 낯설었다. 당신 이름도 겨우 쓰는데, 한글의 세계는 모르는 것 투성이었다. 받아쓰기를 하면 제대로 적는 단어가 손에 꼽혔다.


그렇다.

우리 엄마는 한글을 모르는, 문맹이다.


내가 대학에 진학하고 아빠가 농사를 정리하면서 엄마는 글씨를 연습했다. 그러나 오래 가지는 못했다. 내가 교환학생 가려고 수능 본 지 4년 만에 영어공부 할 때도 죽을 맛이었는데, 40년 만에 연필을 잡은 엄마는 오죽했을까. 엄마는 "공부를 시켰어도 멍청해서 못했을 거야"라며 씁쓸하게 자책만 할 뿐이다.


모순적이게도 나는 글이 없으면 못 사는 사람이다. 엄마의 희생으로 나는 공부를 곧잘 했고 명문대에 합격했다. 25살에 책을 출간한 작가가 되었고, 짧은 시간이지만 기자 생활도 했다. 뉴스를 읽으면 오타가 먼저 눈에 보이고, SNS에 쓰는 글도 맞춤법을 검사한다. 이제는 글을 쓰지 않으면 좀이 쑤실 정도로 글쓰기는 나에게 삶을 기록하고 때로는 감정을 토해내는 필수적인 수단이 되었다. 엄마가 글이 두려워진 사이에 나는 글이 너무나도 익숙해져버린 것이다.


그래서 이제 엄마 대신 엄마의 이야기를 쓰기로 했다. 더 늦기 전에 엄마를 추억하는 글을 남기려고 한다. 언젠가 엄마가 내 글을 또박또박 읽는 날이 오길 바란다. 그리고 말해주고 싶다. 엄마가 글을 잘 몰라도, 엄마의 딸이 이렇게 글을 쓰니 괜찮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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