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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만재 Aug 19. 2020

막내가 언니들을 부러워하는 이유

엄마랑 아빠랑 오래 같이 있잖아

#3 있을 때 잘해, 후회하지 말고


나는 4자매 중 막내다. 위로 언니만 셋을 둔 막둥이이자 터울도 있는 편인 늦둥이다. 첫째 언니와는 9살, 둘째 언니와는 7살, 셋째 언니와는 5살 차이가 난다. 내 가족관계를 듣는 사람들은 하나같이 놀란다. "오잉!?" "진짜~?" 등의 리액션은 흔하다.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도 그랬다면, 다분히 정상인이다.


아빠의 증언에 의하면 나는 어릴 적 언니들로부터 사랑을 듬뿍 받고 자랐단다. 언니들은 학교가 끝나면 나를 보러 오려고 그렇게 달리기를 했다고 한다. 한 명은 내 왼쪽, 한 명은 내 오른쪽, 나머지 한 명은 탈락. 글쎄, 지금으로선 상상할 수 없는 장면이다. (윽 닭살-)


언니들은 늘 나를 부러워했다.


언니들이 주장하는 그들에게는 없고 나에게는 있는 것, 바로 '유전자'와 '특혜'다. 우리끼리 자주 하는 말이 있다. "첫째는 실험용이다", "아이는 낳을수록 유전자가 개량된다."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첫째 언니는 콧대가 낮다. 둘째 언니의 쌍꺼풀은 의사 선생님이 만들어 주셨다. 셋째 언니는 키가 제일 작다. 그리고 막내인 나는 콧대도 높고 쌍꺼풀도 있고 키도 자매 중에서는 제일 크다. (그래 봤자 160cm라는 게 소오름!)


늦둥이다 보니 부모님이 신경 써 준 부분도 참 많다. 엄마는 맛있는 음식은 항상 내 접시에 먼저 담아줬다. 언니들 셋이서 셀프 아나바다 운동을 펼칠 때 나는 새 옷과 새 신발을 가졌고, 언니들은 수능이 끝나야 살 수 있었던 휴대폰을 나는 고등학교 1학년 때 샀다. 나는 진정한 '막내 온 탑'이었다.


지금도 언니들은 나를 부러워한다. 정확히 말하면 20대 미혼의 삶을 그리워한다. 첫째 언니는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매일 육아와 씨름 중인 애둘맘이다. 첫 육아를 경험 중인 둘째 언니는 매일 출근하고 싶다고 하소연한다. 셋째 언니는 뱃속에 아이를 품으며 엄마가 될 준비를 하고 있다. 그리고 나는 친구들과 편하게 약속을 잡고, 남자친구와 데이트도 하고, 밤늦게까지 술자리를 갖기도 한다. 이런 나의 자유로움에 언니들 반응은 언제나 같다. "부럽다(남편 미안)"


그런데 참 희한하지,

나는 언니들이 부럽다.


언니들이 나보다 부모님과 함께 하는 시간이 많다는 것. 이것은 절대적이며 변하지 않는, 변할 수 없는 사실이다.


오래된 가족 앨범을 들여다보면, 내가 태어나기 전 사진들이 있다. 언니들은 "아, 이때 그때구나!", "맞아 그랬었지~", "만재 너 태어나기 전이다"라며 추억을 나눈다. 내가 기억하는 가장 어린 시절의 부모님은 40대인데, 언니들은 더 젊은 시절의 부모님을 기억한다. 나는 내가 태어났을 때보다 더 과거로는 돌아갈 수 없는 막내다. 아- 언니들은 좋겠다.


언니들은 나보다 5년, 7년, 9년 더 부모님과 함께 하는 추억이 많다. 언젠가 부모님이 우리와 이별할 때 나는 그 5년, 7년, 9년을 앞서갈 수 없다. 만약 부모님이 100세에 돌아가신다면 언니들은 70대, 나는 60대다. 아직은 먼 이야기처럼 느껴지지만, 60이나 70이나 거기서 거기인 듯싶지만, 아마 그때의 나는 더 오래 보내지 못한 하루하루를 안타까워하고 그리워할 것이다.


콧대는 필러를 맞으면 되고, 작은 키는 높은 신발을 신으면 되고, 쌍꺼풀은 이미 만들어졌다.

하지만 시간은 손댈 수 없다. 갖은 애를 써봐도 막내는 그 시간을 따라잡을 수 없다.


막내의 단점을 깨달은 후,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은 부모님과의 시간을 허투루 보내지 않는 것이다. 물리적 시간을 늘릴 수 없다면 퀄리티로 승부하자는 나름의 전략(?)을 세웠다. 깜빡하는 날도 있지만 거의 매일 안부 전화를 한다. 본가에 내려가면 최대한 같이 시간을 보내고, 밥은 엄마가 주는 대로 다 받아먹는다. 아무리 무거워도 엄마가 챙겨주는 반찬이라면 다 받는다. 이제는 제법 익숙해질 때도 됐는데, 다시 서울로 돌아올 때면 여전히 아쉽고 뭉클해진다.


이번 추석은 처음으로 언니들 없이 부모님과 셋이서만 보낼 예정이다. 나는 벌써부터 신이 나서 '어떻게 하면 재밌게 지냈다고 소문이 날까' 고민 중이다. 내가 태어나기 전 언니들이 부모님과 시간을 보냈다면, 지금의 20대 미혼 막내딸은 언니들의 부재를 틈타 부모님과 더 가까워지려 한다.


"있을 때 잘해, 후회하지 말고"라는 노래 가사처럼만 하면 언니들을 부러워하지 않을 수 있을까?


일단, 안부 전화를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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