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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만재 Dec 02. 2020

새벽 5시, 엄마는 고3 딸과 집을 나섰다

#14 무모한 희생, 무한한 사랑


어릴 적 나는 만화보다 스포츠 중계를 좋아했다. 하교 후에 집으로 돌아왔을 때, 엄마 아빠가 밭일하러 나가는 주말에 그 빈자리는 언제나 스포츠가 채워주었다.


스포츠와 사랑에 빠진 나는 스포츠산업에서 일하는 사람이 되겠다는 꿈을 품고 체대 진학을 준비했다. 체육대학에 진학하려면 체대입시를 준비해야 했다. 지금은 실기 없이 수능 성적으로만 평가하기도 하고, 내신과 자기소개서만 평가하는 전형도 있지만, 라떼는(나 때는) 실기 시험이 필수였다.


하지만 5만 명의 인구가 사는 작은 시골 마을에서 체대입시를 준비하기란 막막함 그 자체였다. 담임 선생님조차, 체육 선생님조차 알고 있는 정보가 많지 않았다. 나는 인터넷 카페에서 입시 정보를 얻기 시작했고 그렇게 예체능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어느 날 엄마에게 새벽 5시에 일어나 운동장으로 가서 운동을 하겠다고 말했다. 160cm의 키에 마른 체형인 나는 체격적으로 체력적으로 결코 유리하지 못했다. 기초체력부터 키워야 했지만 다닐 학원도 운동할 시간도 없었다. 그래서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운동장으로 가야겠다고 다짐했다.


엄마는 내가 하고 싶다고 하는 모든 일에 'YES'라 말하는 사람이었다. 그리고 함께 했다. 새벽 5시가 되면 나를 깨우고 나와 함께 운동장으로 향했다. 가로등만이 유일하게 빛나는 운동장에는 엄마와 나 둘 뿐이었다. 나의 꿈을 위해서, 나의 안전을 위해서, 엄마는 나와 함께 했다.


사실 내가 체대 진학을 결심하기 전까지, 엄마는 내게 '한의사가 되었으면 좋겠다'라고 말했다. 당신이 아플 때 치료해주면 좋겠다는, 강요 하나 없이 엄마처럼 순수한 소망이었다. 그런 순수한 기대와 달리 다소 독특한 (전교에서 유일한) 길을 선택한 막내딸의 진로가 탐탁지 않았을 것이다.


그럼에도 엄마는 내가 꿈을 이룰 수 있도록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물질적인 지원이 아닌 마음으로, 행동으로 함께 하는 지원. 무모한 헌신이자 무한한 사랑이었다.


든든한 지원군 엄마 덕분에 나는 고등학교 3년 동안 목표했던 대학의 체육 관련학과에 입학했다. 지금은 전공과 다른 일을 하고 있지만 오래도록 품은 꿈을 마침내 성취한 경험은 내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자산이 되었다. 그날, 그 새벽에 나의 꿈을 지지해주는 엄마가 없었더라면 과연 나는 꿈을 이룰 수 있었을까?


2020년 12월 3일, 수능이 열린다. 8년 전, 언제나처럼 든든한 아침을 차려주고 말없이 응원의 눈빛으로 수능 시험장 앞까지 바래다주던 엄마의 모습이 아른거린다. 지금도 엄마는 우리 자매들에게 다른 엄마들만큼 못해줘서 미안하다고 말하지만, 나는 확신한다. 우리 엄마는 여전히 내가 꿈을 꾸고 꿈을 이룰 수 있게 해주는 최고의 파트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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