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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만재 Nov 19. 2020

결혼 36주년, 어느 60대 부부의 결혼기념일

#13 아빠가 엄마에게 꽃을 선물했다


1984년 11월 18일


신랑 양정준 군과 신부 설성순 양은 부부의 연을 약속했다. 그날 꽃다운 스물네 살이었던 성순은 자신의 결혼 생활이 고생길이 될 줄은 알지 못했다. 그녀는 정말 '아무것도 모르고' 결혼식을 올렸다.


사실 성순은 결혼식을 하기 전, 결혼에 대한 후회가 들 뻔했다. 신혼집으로 살게 될 정준의 집에 간 적이 있는데 여기저기 낡고 어질러진 집 상태를 보고 '여기서 내가 지낼 수 있을까' 걱정스러웠다.


지금이야 바깥 손님 그것도 며느리가 될 여자가 집에 오면 깨끗이 쓸고 닦아 맞이하는 게 기본 예의지만, 그때는 그런 대접을 전혀 찾아볼 수 없는 시대였다.


정준은 성순이 다녀간 이후 신혼집을 열심히 뜯어고쳤다. 자동차가 있는 사람도, 면허를 딴 사람도 몇 없던 광주의 작은 시골 마을에서, 정준은 결혼식을 마친 후 직접 운전을 해 정읍의 내장산으로 신혼여행을 떠났다.


1박 2일로 허니문을 보낸 성순과 정준은 그 후로 36년이라는 세월을 함께 보냈다.


2020년 11월 18일


오늘은 우리 부모님 정준과 성순의 결혼 36주년이 되는 날이다. 둘로 시작한 식구는 네 명의 딸이 태어나 여섯 식구가 되었고, 지금은 사위에 손주들까지 13명으로 늘어났다! 나와 언니들은 카톡으로, 전화로, 현금(?)으로 감사와 사랑을 전했다.


결혼기념일을 맞이해 정준과 성순에게 36년 전 결혼식에 대해 물었다. 둘은 이구동성으로 '아무것도 몰랐다'고 답했다. 빛바랜 결혼식 사진 속 엄마 아빠의 표정이 마냥 풋풋하게만 보였는데, 진짜 아무것도 몰랐구나!?


이번 결혼기념일엔 역사적인 사건이 하나 있다. 정준이 성순에게 꽃다발을 선물했다!


평소의 정준은 이벤트를 거의 하지 않는 편이고 성순의 취향도 잘 모른다. 여전히 아무것도 모르는 정준이 성순의 최애 빨간 장미를 품은 꽃다발을 선물한 것이다. 말 그대로 오래 살고 볼 일이다. 덕분에 모처럼 성순의 얼굴에 꽃이 활짝 폈다.


자동차로 운전을 해 신혼여행을 떠난 것을 아직도 자랑하는 정준은 아마 오늘의 서프라이즈도 오랫동안 뿌듯한 기억으로 간직할 것이다.


2050년 11월 18일


아무것도 모르고 치른 결혼식처럼, 아무것도 몰라 더 감동이었던 꽃다발 선물처럼, 아무것도 알 수 없는 30년 후 오늘. 60대 초중반의 정준과 성순은 30년 후에도 함께 결혼기념일을 보낼 수 있을까?


때때로 비움이 주는 채움이 있다. 우리는 당장 내일도 장담할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할 때 비로소 현재에 충실할 수 있다. 각자 살아온 날보다 함께 살아온 날이 많지만, 어쩌면 함께 살아온 날보다 앞으로 살아갈 날이 더 적을지도 모르는 정준과 성순. 그렇기에 해를 거듭할수록 소중해지는 결혼기념일이다.


영원한 나의 슈퍼맨 & 슈퍼우먼.

정준과 성순의 결혼 36주년을 진심으로 축하합니다. 엄마 아빠 사랑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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