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앞자리 수가 바뀌는 나이에 큰 의미를 부여한다. 스무 살은 미성년자 딱지를 떼고 성인이 된다고 해서 많은 축하를 받는다. '계란 한 판'으로 비유하는 서른 살은 취업했니, 결혼은 안 하니 등등 개인보다는 사회가 만들어 낸 의미가 크다.
'불혹'의 마흔은 (요즘엔 그렇게 느껴지지 않기도 하지만) 왠지 모르게 젊음보다는 그 반대로 향하는 시작으로 다가온다. 이외에도 지천명(50), 예순(60), 칠순(70), 팔순(80) 등등 새로운 십의 자리 수가 시작되는 나이는 마치 놀이동산에서나 만날 법한 엄청 큰 풍선처럼 느껴진다.
9년 동안 한 자리 수의 나이를 가지다가 생애 처음으로 두 자릿수 나이가 되는 열 살은 왜 다른 나이만큼 주목받지 못하는 거야? 갑자기 삐뚤어진 청개구리가 되어 세상의 모든 열 살을 축하하고 응원하고 싶어졌다.
18년 전 열 살의 나는 아마도 무언가 대단한 어른이라도 된 것 마냥 기뻐했을지도 모르겠다. 지금 생각하면 한없이 미숙하고 연약하지만, 그렇다고 스물여덟 살의 지금이라 한들 달라진 건 별로 없다.
초등학교 3학년, 열 살의 나는 일기를 잘 쓰는 어린이였다. 담임선생님은 하루도 빠짐없이 일기를 쓰는 나를 아주 예뻐해 주셨다. 선생님이 우리 엄마에게 '은희 일기는 한 글자 한 글자 읽게 된다'라고 칭찬한 덕분에 엄마가 정말 기뻐하기도 했다.
2학기에는 담임선생님이 첫 아이를 임신하고 출산휴가를 갖게 되면서 새로운 임시 담임선생님이 오셨다. 다른 지역에서 오신 선생님이라서 그런지 공기부터가 다르게 느껴졌는데 그 선생님도 나를 많이 챙겨주셨다. 연말 학예회 공연에서는 내 드레스만 유일하게 다른 친구들과 겹치지 않아서 괜스레 우쭐한 마음도 있었다.
두 선생님들에게 사랑을 받은 것과 달리 친구 사이가 썩 좋지는 않았다. 나는 친구라고 생각했는데, 두 명의 같은 반 아이들이 나를 화장실로 부르더니 몇 마디를 던졌다. 무슨 말을 했는지까지는 기억나진 않지만 어딘가 마음 한편이 쓰리다.
나의 열 살은 우리 가족 여섯 식구가 마지막으로 다 같이 살았던 해이기도 하다. 내가 열 살일 때 큰언니는 열아홉 살이었는데, 이듬해 큰언니의 대학 진학을 시작으로 언니들은 하나 둘 본가를 떠나 타지에서 자취를 시작했다. 이제는 언니들이 각자의 가정을 꾸리면서, 우리 가족이 한 지붕 아래서 사는 날은 아마 평생 찾아오지 않을 것 같다.
그저 먹고 놀고 자는 매일의 반복으로 여겼던 나의 열 살도 자세히 들여다보니 많은 일들이 있었다. 세상이 정해주는 의미가 아니라 내가 만들어가는, 나도 모르게 남겨진, 그래서 더 소중한 의미들. 아홉 살도 열한 살도 안 된다. 처음으로 두 자리 수의 나이를 갖는, 고유한 의미들을 가진 열 살을 우리는 조금 더 어여삐 여겨주면 어떨까.
세상의 모든 열 살에게, 혹은 열 살을 지나온 모든 이에게 안부를 건네 본다.
당신의 열 살은 어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