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은 자유를 선사한다
부부싸움을 했다. 매번 그렇듯 싸움의 원인은 소소하다. 그는 그의 입장에서 나는 내입장에서 각자가 서운해서 불편한 감정을 호소하고 냉전이 시작되었다. 이번엔 나도 지고 싶지 않다. 할 테면 해봐라 나도 이번엔 먼저 사과하지 않을 거야!!라고 버티려다가 문뜩 든 생각.
‘아, 우리 생활비 협상이 아직 끝나지 않았지..’
나는 현재 휴직 중이고 이번 달부터 회사에서 나오던 육아휴직 급여가 끊긴다. 월급에 비하면 소소한 금액이지만 내 용돈과 아이와의 나들이 비용으로는 충분한 돈이 매달 들어온다는 것은 숨통이 트이는 일이었다. 일을 쉬는 동안 작고 소중한 급여는 나에게 그만큼의 자유를 주었고 그것이 사라진다는 것은 공포에 가까운 두려움이다. 계속 맞벌이를 해왔고 서로의 급여를 알고 생활 패턴을 공유하고 있으니 서로의 용돈을 딱히 정해두거나 제한하지 않고 지냈다. 각자 비상금도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부부인지라 이슈가 있을 때 잔고를 공유할 뿐 통장을 합치거나 카드 내역을 공개한 적이 없다. 그런데 앞으로 남편카드를 쓴다면 나의 일거수일투족이 고스란히 그에게 실시간으로 전달되니 카메라만 없을 뿐 관찰예능 프로그램처럼 내 생활이 전부 노출되는 느낌이다. 그에게 숨길 일을 하지는 않지만 뭔가 까발려지는 느낌이 싫다.
생활비 협상에서 현금으로 받는 생활비만큼을 내 카드로 사용할 수 있을 테고 그 금액만큼 자유로운 지출이 가능하다. 냉전을 유지하면 내가 원하는 금액으로 협상하는데 불리할 수 있다. 그것이 확정되기 전이니 한발 물러나야겠다. 이런 제길. 이제야 깨달았다. 육아를 한다고, 집안일을 한다고 전업주부가 아니다. 남편이 번 돈으로 생활하는 것. 남편카드를 사용하는 것. 이것이 진정 전업주부의 생활인 것이다.
주부들과의 대화에서 부부싸움 도중 “너도 나만큼 벌어오던가!”라는 남편의 말에 무너진다고들 한다. 집안일과 육아라는 행위 또한 돈으로 환산하면 엄청난 가치가 있지만 당장 눈에 보이지 않고, 월급은 직장생활의 노력이 바로 돈이라는 숫자로 환산되어 보여지니 1차원적인 부부싸움 상황에서는 이 논리를 설명해야 한다는 자체로 분노가 치밀어 오를 듯하다.(물론 가정주부의 노고를 높이 사고 인정하는 훌륭한 남편들 또한 많이 계시리라 믿는다)
경제력은 그만큼의 발언권을 뜻하기도 한다. 누가 얼마를 버느냐와는 별개로 부부의 합의에 따라 한 명이 경제권을 가지기도 하는데 그 경우에도 경제권을 가진 사람의 목소리가 커지는 경우가 많다. 아직 남편이 뭐라고 한 것도 아닌데 경제력이 사라지니 나는 이렇게 쭈굴 해지는구나..
남편카드를 사용할 때마다 꼭 필요한 지출인지 스스로 검열하게 되는 나를 발견한다. 우리 가정의 경제를 위해서는 좋은 변화이지만 지출할 때마다 한없이 작아지는 나를 보며 안쓰럽기도 하다. 나 스스로 돈에 너무 큰 권력을 부여한 것일까.
매달 일정한 금액의 돈이 나에게 입금된다는 것은 그만큼의 자유를 뜻한다. 돈은 자유를 선사한다. 여성들에게 자유를 위한 돈의 필요성을 역설하던 버지니아울프의 말이 진정으로 와닿는 순간이다. 남편이 주는 생활비 말고는 내 통장에 <급여>명목으로 입금되는 돈이 없다는 것. 나에게는 이것이 진정 전업주부의 체험인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