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존감을 채우고 싶을 땐 창틀 청소를 하자

나의 살림 해방일지

by 리토

안식년을 마치고 이제 다시 워킹맘의 생활로 돌아갈 날이 100일가량 남았다. 100일이라는 숫자는 왠지 특별해서 남은 기간을 어떻게 보내야 할까 고민이 많다. 일을 쉬는 동안 그토록 원하던 시간의 자유를 마음껏 누렸고, 내 마음과 몸을 돌보기 위한 휴식과 충전은 충분히 했다. 아이를 케어하는 일도 사람들을 만나서 관계를 쌓고 소통하는 일까지 원 없이 했다. 마지막 남은 소중한 시간을 어떻게 보내야 후회가 없을까..


복직 100일 전인 그날. 달력에 동그라미 쳐놓은 바로 그날이 되자 ‘시간을 알차게 보내야 한다’는 압박에 억눌려 오히려 무기력하게 tv만 보다가 아이 하교시간이 되었다. 쉬는 것도 아니고 무얼 할까 고민만 하다가 날려버린 시간이라 마음만 초조하고 스스로를 한심하게 생각하며 하루가 지나가버렸다.


다음날은 뭐라도 해보자 싶어서 몸을 일으켜 이불빨래를 돌렸다. 햇살이 좋아서 베란다에 새하얀 이불을 널려고 하는데 갑자기 베란다 바닥의 먼지들이 보인다. 새 아파트에 입주해서 이사 온 지 1년이 넘었다. 안방 베란다에는 물청소가 가능하도록 호스가 설치되어 있는데 배수구로 벌레가 들어올 수 있다는 남편의 말에 그곳을 막아두고 한 번도 사용한 적이 없다. 새 아파트로 이사 와서 처음처럼 유지만 잘하자며 방심하고 있었더니 그동안 쌓인 먼지들로 더러워진 공간이 이제야 눈에 보인다.(그동안 신나게 밖으로 나다니며 잘 놀았구나 나 놈)


베란다에 있던 몇 가지 물건을 다 빼내고 호스로 물을 뿌려 바닥 청소를 하니 엔도르핀이 도는 느낌이다. 내친김에 창틀과 더러워진 창문까지 닦으니 이렇게 뿌듯할 수가 없다. 누구에게 보이는 부분이 아닌 나만 보는 공간의 먼지를 털어내고 깨끗하게 청소를 하고 나니 스스로가 기특해서 내면에 뿌듯함이 가득 차오른다.


일찍부터 사회생활을 시작해서인지 집안일보다는 회사일이 익숙했다. 직장생활을 하며 얻은 꼼수 중 하나는 티 나게 일을 하고 눈에 보이는 성과로 인정을 받는 것이었다. 그 습관이 집안일하는데도 작용했는지 눈에 잘 보이는 부분을 정리하고 만족하는 게 그동안의 패턴이었다. 창틀의 먼지 따위 가끔 눈에 거슬리긴 했지만 몸을 숙여 닦는 것보다 못 본척하는 게 더 마음 편했다. 정 거슬리면 청소기로 대충 빨아들이는 정도로 그동안의 청소를 마무리해 왔다. 억지로 보지 않으면 잘 보이지도 않는 곳이고 바닥 걸레질처럼 밀대로 밀 수도 없고 몸을 수그려서 구석구석 닦아야 하는 그 창틀청소라는 것은 내 기준에서 노력대비 효과가 적어서 효율성이 떨어지는 행위였다. 그런데 그 행위를 하고 난 뒤의 개운함은 의무감으로 청소기를 돌리던 때엔 느끼지 못한 감정이었다.

'아, 이것이 바로 청소의 기쁨이구나!'


일과 육아에 지쳐서 안식년을 갖기로 했을 때 하고 싶었던 일을 생각해 보니 첫 번째가 집정리였다. 집안 구석구석을 정리하며 아이의 공간, 남편의 공간, 내 공간을 정돈하고 나니 마음의 여유가 생겼고 그다음으로 몸 건강을 위해 운동을 시작했다. 운동과 독서를 하며 건강한 관계들이 생겨났고 그들로 인해 나는 위로와 치유를 받았다. 그 시간들을 보내며 나는 다시 사회로 돌아갈 힘을 얻었다.


정신없이 바빠질 워킹맘의 세상으로 돌아가기 전에 해야 할 일은 다시 집을 정리하는 일이다. 일을 마치고 집에 돌아와 편하게 쉴 공간을 마련하는 일. 그것이 복직을 100일 남긴 내가 첫 번째로 해야 할 일이다. 그 시작을 창틀 청소로 하길 잘했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