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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선복 May 23. 2023

그해 사이판엔 스무살의 내가 있었다


드르륵드르륵 미싱 소리로 요란한 사이판의 어느 봉제공장, 미싱의 미도 모르는 나는 미싱보조로 봉제반에 배치받았다.


에어컨은 켜져 있지만 땀이 비 오듯 흘러내린다, 선크림이 이상한 건지 이곳 기온에 아직 적응하지 못한 내 피부가 문제인 건지 얼굴의 모공이란 모공은 죄다 열려있는 듯하다.

흐르는 땀에 자꾸만 안경이 흘러내린다. 손등으로 연신 추스르다 결국 안경을 벗었다. 거추장스러운 게 사라지니 살 것 같다. 그러나 흐릿한 시야 손은 느려지고 일감은 점점 쌓여간다.


안 되겠다!

다시 주섬주섬 안경을 찾아 썼다.

오! 그래 이거지. 손이 다시 빨라진다. 안경이야 흘러내리든 말든.     



“어머. 너 그러고 있으니까 꼭 할머니 같다 얘.”

    

뾰족한 음성은 보나,마나 기숙사 룸메이트 미영 아줌마다.

얼른 안경을 추켜올렸다. 소용없는 짓이다.

안경을 벗고 얼굴의 땀을 훔쳐냈다.

그제야 제자리를 찾은 안경 너머로 미영 아줌마를 쳐다보았다.

일감이 잠시 떨어졌는지 뒤편에 미싱사와 노닥거리며 질겅질겅 껌을 씹어대는 미영 아줌마의 입 모양이 오늘따라 참 못나 보인다.       

    



벌써 점심시간인가 보다.

우르르 사람들이 빠져나간다.

어떤 이들은 벌써 저만치 식당으로 달려가고 있다. 그 뒤를 느릿느릿 걸어 식당에 도착하여 긴 줄을 서고 무슨 맛인지 모를 밥을 오랫동안 씹다가 퍼뜩 생각이 났다.

더듬더듬 바지 주머니 속을 뒤졌다.

기숙사 키가 잡혔다. 이런!

식판을 허겁지겁 정리하고 부랴부랴 기숙사로 튀어 올라가니  아니나 다를까 미영 아줌마와 다른 룸메이트들이 기숙사 앞에 서서 날 빤히 쳐다봤다. 식은땀이 났다.

헐레벌떡 달려가  문을 열어주었다.


“너는 젊은 애가 왜 그렇게 느려? 밥 먹고 한숨 자고 나가려고 했더니 너 때문에 이게 뭐냐고?”


나를 확 밀치며 방으로 들어간 미영 아줌마는 우당탕거리며 2층 침대로 올라갔다.

나도 모르게 눈물이 핑 돌아 얼른 고개를 돌렸다.


“어머. 너 울어? 울 일도 많다 얘. 이런 일에 울면 대체 사회생활은 어떻게 하려고 그러냐?”


요란하게 침대 커튼을 치더니 삐그덕 소리를 내며 자리에 눕는 기척이 들려온다.

1분 1초가 아쉬워 다들 침대 커튼을 친 채 누워있다.



조용히 기숙사 문을 나서 현장으로 향했다.

사막 같은 누런 운동장 위로 이글이글 열기가 뿜어져 나온다.     





#사이판 #스무살 #기억 #봉제공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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