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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선복 Jan 23. 2023

동서와 화해했다

여우 같은 동서와 곰 같은 형님-그녀들의 이야기

내가 그녀를 처음 만난 건 25살 무렵, 남편과 1년 넘게 동거 중이었을 때다. 어느 날 시동생은  우리가 사는 단칸방으로 여자친구라며 그녀를 데리고 나타났다. 앳된 얼굴에 긴 생머리의 그녀는 무척이나 애교스러웠다.

작은 단칸방에 네 명이 둘러앉아 조촐하게 술 파티를 했다. 남편은 스물여섯, 나는 스물다섯, 시동생은 스물넷, 그녀는 스물셋.... 또래의 우리는 친구처럼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그날 헤어지면서 술에 약간 취한 그녀는 나를 껴안으며 애교스럽게 얘기했다."언니, 우리 친하게 지내요."

그때는 몰랐다. 그녀가 나의 동서가 될 줄은. 깃털처럼 가벼워 보이던 둘 사이가 결혼으로 이어지리라고는 꿈에도 몰랐다. 하긴 뭐 나조차도 남편이랑 이렇게 오랜 세월 지지고 볶고 살 줄은 몰랐으니.

그렇게 우리의 인연은 시작되었다.


4남 1녀 중 남편은 셋째, 시동생은 넷째다.  직업이 같아서인지 둘은 각별히 친했고  덩달아 나와 그녀의 사이도 친해질 수밖에 없었다. 그만큼 우리는 자주 만났었다.

그녀와 나는  할머니손에서 컸다는 공통점이 있었지만 그것 말고는  딱히 비슷한 점은 없어 보였다. 깔깔대며 할 말은 다 하는 그녀와 달리 나는 항상 다른 사람의 기분과 분위기에 맞추느라 바쁜 사람이었다. 시댁 식구들과도 순식간에 친해진 그녀는 시어머니를 엄마라고 불렀다. 시어머니 앞에서의 그녀는 마치 막내딸과도 같았고 그런 그녀를 시어머니 또한 딸처럼  편하게 대했다.

곰 같은 나는 여우 같은 그녀가 내심 부러웠다. 가끔은 그녀를 흉내 내어 시어머니를 엄마라고 부르기도 하고 깔깔대며 웃어보기도 했다.

그렇다고 하루아침에 곰이 여우로 변신할 수 있는 건 아니었지만  내겐 마냥 어려운 시댁식구들을 조금은 가벼운 마음으로 대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시간은 흘러 나는 남매를 둔 엄마가 되었고 그녀는 아들 셋 엄마가 되었다. 한때 애교쟁이 여우였던 그녀는  곰과 호랑이 사이의 그 어딘가에서 나와 조금은 비슷한 모습을 하고 있었다. 화장기 없는 얼굴로 비슷한 스타일이 되어버린 우리는 애 다섯을 끌고  여기저기 놀러 다니기 바빴다. 힘든 육아와 만만치 않은 결혼생활을 견뎌내며 우리에게는  전우애와 같은 끈끈한 정이 생겼다.

마음이 허한 날 가끔 전화기를 붙잡고 하루종일 통화하기도 하고 가뭄에 콩 나듯 정신줄 놓고 같이 술을 마시기도 했다. 아이들이 학교를 가면서부터는 조금 더 홀가분히 만날 수 있었다. 같이 밥 먹고 차 마시며 수다 떨고 쇼핑도 하고.... 누가 봐도 꽤 괜찮은 형님과 동서사이였다.  


그랬던 우리 사이가 삐걱대기 시작한 건 남편과 내가 수산물시장에서 장사를 하면서부터었다. 남편은 시동생을 직원으로 채용했고 일을 같이 하면서부터 좋았던  형제사이는 점점 나빠졌다. 화가 나면 시동생은 무단결근을 했다. 서로가 서로를 못 견뎌하며 6년을 버티다 결국 참다못한 내가 그 악순환의 고리를 끊고자 시동생을 해고했다. 그걸로도 분이 풀리지 않아  시동생부부의 연락처를 삭제하고 둘을 차단하기까지 했다. 앓던 이 빠지듯이  후련한 감정은 잠깐이었다. 할 말을 제대로 못한 채 일방적으로 관계만 차단시킨 나는 꽤 오랫동안 힘들었다. 그들을 생각하면 문득문득 치밀어 오르는 감정을 주체할 수 없어 울기도 많이 울었다. 그러다 잠들면 어김없이 꿈속에 시동생과 동서가 나타났다.

 그러던 어느 날 오후 베란다에서 빨래를 널다가 문득 그녀를 그리워하는 나를 발견했다. 가슴이 뭐라 말할 수 없이 허전했다. 핸드폰을 열고 차단목록을 해지했다.

벌써 1년 전 일이다.


그 일이 있고 나서 처음 맞는 명절,  피하려야 피할 수 없었다. 시댁에서 만난 그녀와 시동생은 내 눈을 피했다. 나도 억지로 눈 마주치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하지만 같은 공간에서 같이 음식 준비하며 말 한마디 안 하기는 불가능했다. 손위 형님이 잠깐 자리를 비 사이 우리 둘만 남겨진 주방은 숨 막힐 듯 고요했다. 남의 살림이라 뭐가 뭔지 몰라 이것저것 찾아 헤매다 우연히 눈이 마주쳤다.

"잘 지냈어 동서?" 참지 못하고 내가 먼저 말을 꺼냈다.

"그냥 그렇죠 뭐."

내키지 않은 말투였지만 그녀는 무시하지 않고 대꾸를 했다. 잠깐의 정적을 못 견디고 나는 또 말을 걸었다.

"나 아까 오기 전에 동서한테 전화했었는데.... 나도 차단당한 거 맞지?"

"형님이 먼저 저 차단했잖아요. 카톡까지 차단했더라고요. 그래서 저는 형님 전화번호 삭제했어요."

"전화번호 삭제하면 뭐 하니? 내 머릿속에 남아있는데." 그것은 내 얘기였다. 그녀는  어떤지 몰라도 나는 그랬다. 독하게 맘먹고 전화번호를 삭제했지만  머릿속에 선명하게 남아있는 그 숫자는 지워지지 않았다.

동서는 잠자코 아무 말이 없었다. 주방을 들락날락하던 식구들이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나는 진심을 담아 말했다.

"마음 풀어 동서... 나도 그러고 나서  맘이 편치 않았어. 꿈에는 왜 그렇게 나타난 거니? "

미안하다는 말은 하지도 않았는데 그녀는 벌써 풀린 눈치다.

"나는 뭐 형님 꿈 안 꾼 줄 알아요? 나도 맨날 꿨다고요. 첨엔 그렇게 서운하더니 시간이 좀 지나니 저도 조금은 이해가 되더라고요. 오죽하면 그랬을까 하고요."

주책맞게 눈물이 나오려 하는 걸 참았다.

그렇게 우리의 말문은 터졌다. 거의 1년 만이었다.

나와 말 한마디도 안 하겠다고 다짐을 하며 왔다는 그녀는 다시 예전으로 돌아가 쫑알쫑알거리며 나 쫓아다니기 바빴다. 그런 그녀가 나는 좋다. 모든 것이 제자리로 돌아온듯해서 기쁘다. 마음이 한없이 편안하다. 쉽게 마음을 풀어주는 동서가 그저 고맙다.

명절 끝나고 우린 따로 만나 회포를 풀 예정이다.

그동안 못했던 이야기가 산처럼 쌓여있다. 그것을 안주삼아 우린 또 울고 웃으며 즐거운 만남을 이어갈 것이다.

나는 여우같은 동서가 좋다!




#별별챌린지 #글로성장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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