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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선복 Jan 19. 2023

아이를 낳고 입원실에서 내가 제일 먼저 했던 일

아픈 아이 앞에서 부모는 한없이 작아진다

팔에 링거가 꽂힌 채 나는 핸드폰을 켜고 작명사이트에 접속했다. 이리저리 검색 끝에 마음 가는 곳을 선택하고 아이 생년월일과 한글이름을 입력했다. 사주에 어울리는 한자를 추천받으려는 거다. 유료 결제창이 떴다. 망설임 없이 결제 버튼을 누른다. 이것저것 입력해야 할 게 많다. 팔이 저려오지만 참을 수 있을 때까지 참는다. 도저히 참을 수 없어 잠시 팔을 내리고 쉬어본다.

제왕절개로 아이를 낳은 지 하루가 지났다. 소변줄은 제거됐지만 링거는 아직 꽂혀있고 움직임이 자유롭지 못해서 반듯이 누워있는 자세만 취할 수 있다. 저리던 팔이 조금 나아져서 다시 핸드폰을 들고 결제를 마저 진행했다. 드디어 결제 완료가 뜨고 한자를 차례로 추천해 준다. 뜻풀이를 꼼꼼히 읽고 또 읽어본다. 과연 어떤 한자를 선택해야 우리 아이에게 조금이나마 덜 시련을 줄까... 몇 시간을 고민하고 또 고민한 끝에 나는 간신히 결정을 내릴 수 있었다. 이름 하나 짓는데 몸도 마음도 만신창이가 된 느낌이다.


몇 시간 전 간호실에서 연락이 왔다.

담당 선생님 호출이라고 했다. 겨우 몸을 일으키고 구부정한 자세로 링거 폴대를 질질 끌고 2층 진료실로 내려갔다. 담당 선생님은 아이의 심장에서 잡음이 들린다며 선천성심장병이 의심되니 퇴원하는 대로 대학병원에서 진료를 받으라고 했다. 그 뒤에 뭐라고 한참을 얘길 했지만 내 귀에는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

하늘이 무너지는 슬픔이 무엇인지 그때 알았다. 무슨 정신으로 병실로 돌아왔는지 모른다. 겨우 정신을 차리고 내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생각해 보았다.

문득 아이 이름이 떠올랐다. 한글이름은 지었는데 한자는 딱히 정해지지 않은 상태였다. 적당히 맘에 드는 한자를 골라 쓰려고 했던 터라 크게 고민한 적이 없었는데... 이제는 아무거나 대충 하면 안 될 것 같은 마음이었다. 이름이라도 정성 들여 지어주고 싶었다.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간절한 마음을 담아 그렇게 유료 작명을 한 것이다. 이제 막 출산한 엄마는 아픈 아이에게 그것 말고는 해 줄 것이 없었다.

모유 수유하려고 신생아실에서 만난 아이는 내 품에서 순하게 잘 먹고 잘 잤다. 그리 아파 보이지 않아서 다행히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아이에게 한없이 미안해서 나는 몰래몰래 참 많이도 울었다.


​퇴원하고 곧장 대학병원에서 진료를 받았다.. 정확한 병명은 심방중격 결손과 심실중격 결손이라고 했다. 우심방과 좌심방 사이의 벽에, 우심실과 좌심실 사이의 벽에 각각 구멍이 생겨서 이를 통해 혈류가 지나가는 선천성 심장질환이라고 했다. 그 구멍은 아이가 크면서 저절로 닫히는 경우도 간혹 있다고 희망적인 얘기도 들었다. 어쩌면 희망고문일 수도 있지만 수술만은 피하고 싶었던 터라 남편과 나는 일단 지켜보기로 했다. 6개월에 한 번씩 대학병원 진료를 보면서도 아이가 아프다는 사실을 나와 남편은 꽤 오랫동안 가족들에게 숨겼다.


우리의 간절한 마음에도 결국 아이는 29개월 즈음 서울대병원에서 최종 수술 권유를 받았다. 심방에 생겼던 구멍은 저절로 막혔지만 심실 쪽에 생긴 구멍으로 인해 판막까지 영향을 미친다고 했다. 다른 선택은 없었다. 그제야 우리는 아이가 아프다는 사실과 함께 수술도 해야 한다고 가족들에게 알렸다.


돌이키고 싶지 않은 시간이었지만 다행히 아이는 무사히 수술을 받고 잘 회복하여 2~3년에 한 번씩 정기검진을 받으며 씩씩하게 자라고 있다. 얼마 전 진료에서 아이 담당 선생님은 이젠 마라톤을 시켜도 되겠다며 아무 걱정 말라고 하셨다. 나중에 시집가서 아이 낳는데도 아무 문제없을 거라며 웃으며 말씀하시는데 나는 눈물이 찔끔 났다.


그날 산부인과에서 아이가 아프다는 얘길 들었던 순간부터 지금까지 나는 한 번도 그동안 겪었던 이야기들을 글로 쓰지 못했다. 쓰고 싶어도 쓸 수 없었던 이야기를 오늘 나는 아이의 12번째 생일을 보내며 처음 써본다.


딸아... 생일 축하한다!!

엄마가 우리 딸 많이 사랑해!

힘든 거 잘 견뎌내고 건강하게 자라줘서 고마워. 엄마의 간절한 염원을 담아 지어준 이름처럼 하늘 높이 너의 뜻을 펼치며 거침없이 살거라. 너의 뒤에서 항상 응원할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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