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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선복 Jan 18. 2023

추억이 모락모락

나의 옛날이야기

학교 끝나고 느지막이 집으로 돌아오는 길..

나는 늘 멀리서부터 우리 집 굴뚝을 확인하는 버릇이 있었다.

굴뚝에서 연기가 나면 누군가 나보다 먼저 돌아와서 저녁준비를 하고 있다는 것으로, 그맘때 나에게 가장 반가운 건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굴뚝이었다.


하지만  겨울을 제외한 그 외 계절엔  농사일로 바쁜 어른들이 그 시간에 돌아와 있을 리가 없었다.

나를 맞이하는 건 연기가 나지 않는 굴뚝과

 냉랭한 기운이 감도는 부뚜막이었다.

책가방을 벗어던지고  서둘러 쌀을 씻어서 솥에 안치고 부엌 아궁이 앞에 쪼그리고  앉아  어설픈 솜씨로  불을 지펴본다.

하지만 어린 내가 만만한 건지 불은 좀처럼  쉽게 붙지 않고 한참을 애를 태우다 울기 일보 직전쯤 아니면 엉엉 울음을 터뜨릴 때에야 간신히 살아난다.

불이 활활 붙기 시작하면  그때서야 안심이 되면서 마음도 이내 진정이 된다.

가마솥의  밥도 서서히 끓기 시작하며 모락모락 김을 내뿜으면 춥고 쓸쓸했던 마음이 눈 녹듯이 사라진다. 정적이 흐르던 집은 그제야 온기가 흐르며 생동감이 느껴진다.

 나는 따뜻한 불 앞에서 오래도록 그 평화로움을 누린다. 이글이글 타오르는 장작불과  모락모락 김이 나는 가마솥 사이의 그 완벽한 안락함 속에서.

....


어른이 되어서도 가끔 그때를 떠올린다.

요즘처럼  쌀쌀한 날씨에  덩달아 마음도 휑한 날이면  나는 미리 핏물을  빼서 한번 끓여놨던 사골뼈를  큼지막한 냄비에 안치고  가스불 위에  올린다.

잠시 후 냄비는 보글보글 끓으면서  모락모락 김이 오르기 시작한다. 썰렁했던 주방이 온기가 돌면서 휑하던 내 마음은  따뜻함으로 채워지고  사골육수의 구수하고 진한 향으로 주방은 더욱 평화로움이 깃든다. 나는 그 속에서 말할 수 없는 편안함을 느끼며 책을 읽어 내려가기 시작한다.


가끔은 대추차를 끓이기도 한다.

은은한 불 위에 대추를 넉넉히  품은 주전자가 모락모락 하얀 김을  올리면  나는 하염없이 그것을 바라보며 세상만사 온갖 시름을 잊는다. 달큰한 대추향으로  가득한  사랑스러운 나의 주방을  바라보며 나는 또  살아갈 힘을 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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