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선복 Jan 17. 2023

나의 첫 외박

어쩌면 그것은 가출이었을지도...

망했다! 등줄기로 식은땀이 흘렀다.

바지 주머니며 잠바 주머니며 주머니란 주머니는 죄다 뒤져봤지만, 열쇠는 없었다. 믿기지 않았다. 분명히 바지 주머니 속에 잘 넣어놨는데…… 몸 구석구석 아무리 훑어 내려도 없다.

아기 띠를 풀어서 등에 업고 있던 동생을 맨바닥에 내려놨다. 혹시라도 그 속에 열쇠가 숨어있기를 바라면서.

아기 띠도 탈탈 털어보고 동생 몸까지 샅샅이 뒤져보지만, 그 속에서 열쇠가 나올 리는 없었다.  친구들과 고무줄놀이하며 흘렸나 싶어서 주변을 살펴보아도  땅거미가 어둑어둑 지기 시작한 터라 잘 보이지도 않았다.

그래도 엉금엉금 기어 다니다시피 하면서 한참을 찾아 헤맸지만  헛수고였다.

눈물이 핑 돌았다. 바닥에 앉혀놓은 동생은 어느 순간 얌전해져서 가만히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열쇠를 잃어버린 게 이번이 벌써 세 번째다.

지난번에도 이렇게 동생을 업고 놀다가 열쇠를 잃어버려서 엄마한테 한바탕 맞았었다. 그 악몽이 채 가시지도 않았는데 오늘 또 열쇠를 잃어버린 거다. 내가 원망스러웠다. 엄마 말처럼 나는 칠칠치 못한 아이가 맞나 보다.

함께 열쇠를 찾아주겠다고 남아 있던 아이들도 하나둘 돌아가고 나는 더욱 초조해졌다.

이제는 열쇠가 문제가 아니었다. 내가 무사히 살아남을 수 있을지가 문제였다. 닥쳐올 시련이 눈앞에 그려졌다.

 

이때 멀리서 발걸음 소리와 함께 아빠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일 끝나고 돌아오셨나 보다. 반가워서 하마터면 뛰어갈 뻔했지만 연달아 들려오는 엄마의 목소리에 퍼뜩 정신이 들었다.

차마 또 열쇠를 잃어버렸다고 엄마에게 말할 용기가 나지 않았다. 그 뒤에 닥쳐올 상황이 불 보듯 뻔했으니…….

순간 머릿속으로 도망치자는 생각이 들었다.

발걸음 소리는 점점 가까이 들려오고 희미하게 엄마, 아빠의 실루엣이 보이기 시작했다. 마음은 다급해지고 동생은 엄마, 아빠의 목소리에 움찔움찔 반응했다. 그러는 동생을 가만히 바라보다가 나는 결국 어둠 속으로 냉큼 몸을 숨겼다. 그리고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 상황을 살펴봤다. 엄마는 혼자 맨바닥에 앉아있는 동생을 안아 올리고 주변을 둘러보기 시작했다. 나를 찾고 있었다.

나는 꼭꼭 숨어야 했다. 머리카락이라도 보이면 큰일 날 판이었다.

동생은 안전하게 엄마에게 돌아갔으니 이제 나만 숨으면 된다.

 

어둠 속에 몸을 숨긴 채 미동도 하지 않았다. 멀리서 내 이름을 부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아빠와 삼촌들 그리고 이따금 들려오는 고모 목소리까지…….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편 들어줄 사람은 있지만, 엄마한테 혼나는 건 아무도 대신해 줄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밤은 깊어가고 환한 불빛이 새어 나오는 집들을 나는 하염없이 바라보았다. 아무 집이나 들어가서 쉬고 싶었다.

그러나 집에는 돌아갈 수 없었다.

서러움이 밀려왔다. 쪼그려 앉아서 한참을 숨죽여 울다 보니 몸이 오들오들 떨려왔다. 밖에서 밤을 새우는 건 아무래도 무리인 것 같았다. 고민 끝에 나는 옆집을 찾아가기로 했다. 네다섯 명의 아이들과 부부가 사는 집인데 평소에 나는 그 집 아이들과 자주 어울렸었고 아줌마도 성격이 서글서글하니 내가 하룻밤 재워달라고 해도 거절하지 않을 것 같았다.

우리 집과 너무 가까운 거리에 있는 게 맘에 걸렸지만, 그 집 말고는 딱히 갈만한 집도 없었다.



예상대로 아줌마는 별로 놀라워하지도 않고 쿨하게 자고 가라고 하셨다. 그렇게 나는 그 집 아이들과 한 방에서 다닥다닥 붙어서 하룻밤 자게 되었다.

방은 지저분했고 이불에서는 이상한 냄새가 났지만 그런 걸 따질 처지가 아니었다. 밤새도록 눈을 동그랗게 뜬 채 그 집 천장만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혼자 남의 집에서 자는 건 처음이었다. 불안과 걱정으로 한숨을 못 자다가 새벽에 잠깐 잠이 들었었나……. 밥 먹으라는 아줌마의 목소리에 깨어보니 어느새 아침이었다.

 

악몽 같은 어제 일이 생각났다. 꿈이길 바랐는데 현실이었다.

밥이 넘어갈 리가 없었다. 숟가락을 들고 밥 한술 떠서 억지로 입에 욱여넣었는데 갑자기 그 집 현관문이 활짝 열렸다.

아빠와 고모였다. 순간 눈물이 솟구쳤다.

달려가 안기고 싶었지만 나는 가만히 있었다. 입안에 든 밥알을 우물우물 씹어 삼켰다.

“선아……. 얼른 이리 와! 여기서 왜 이러고 있어? 너 잘못된 줄 알고 고모가 얼마나 걱정한 줄 알아?”

고모의 울음 섞인 목소리에 나도 같이 울고 말았다.

그렇게 아빠와 고모의 손에 이끌려 하루 만에 돌아온 집은 한없이 평화로웠다. 엄마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시끌벅적 생애 첫 외박은 그렇게 막을 내렸고 그 일 이후로 엄마는 한동안 나를 혼내지도 때리지도 않았다.

 

그날 밤새도록 나를 찾아 헤매느라 동네는 발칵 뒤집혔었다고 했다. 등잔 밑이 어둡다고 옆집에 숨어있을 줄을 누가 알았겠냐고 동네 어르신들은 나를 볼 때마다 한동안 그 이야기를 하셨다.

등잔 밑이 어둡다는 속담을 그때 처음 알았다. 그해 나는 겨우 7살이었으니.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