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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선복 Jul 24. 2023

내가 마음에 들지 않은 날

주절주절..



오랜만에 손톱에 매니큐어를 바르고 정성껏 머리를 만지고 굽 높은?(나의 기준) 구두를 신고 집을 나섰다.

가방이 조금 신경 쓰였지만 뭐 그리 나빠 보이지는 않는다.

아침부터 장대비가 쏟아졌지만 오랜만에 친구 만날 생각에 마음은 잔뜩 들떠있다.


오늘은 중학교 동창이자 절친인 미혜의 막냇동생 결혼식이 있는 날이다.

중국에 사는 미혜는 남동생 결혼식에 참석하기 위해 친정엄마랑 아이들을 데리고 며칠 전에 한국에 들어왔다.

아무리 절친이라 해도 만날 수 있는 기회는 이럴 때 말고는 거의 없다 보니 열일 제쳐두고 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마지막으로 얼굴 본 게 5년 전이니 그동안 얼마나 변해있을지 친구 얼굴이 마구 궁금해진다.




쏟아지는 비를 뚫고 택시를 타고 전철을 두 번 갈아타며 2시간이나 걸려  결혼식장에 도착했다.

매무새를 다듬어야 할 것 같아 화장실부터 들렀는데 세상에 몰골이 말이 아니다.

아침에 정성 들여 만진 흔적이라고는 찾아볼 수조차 없는 내 머리카락 ㅜㅜ

더위와 습기로 인해 반곱슬머리가 멋대로 난리부르스를 추고 있고 머리스타일이 그 모양이어서인지 덩달아 얼굴이며 옷차림이며 다 이상해 보였다. 손으로 이리저리 만져보아도 별로 나아지지 않는다. 거울 속 모습에 한숨이 나왔지만 별다른 수도 없고 애써 괜찮은 척 표정관리라도 해보며 화장실을 나섰다.



멀리 친구 얼굴이 보인다. 반갑게 손을 흔드는 미혜를 보자 조금 전의 고민은 저만치 던져버리고 한달음에 달려가 얼싸안는다. 5년 전에 비해 후덕해진 두 여인네는 아이처럼 방방 뛰며 반가움에  한참 동안 어쩔 줄 모른다.


미혜의 얼굴은 예전 그대로인 것 같다. 전문가의 손길이 닿은 고운 화장과 헤어스타일 눈이 가는 순간, 내 모양새가 생각났다.


'아우.. 미치겠네'


그러거나 말거나 미혜의 손에 이끌려 어머님께 인사드리고 그녀의 동생과 두 아이들과 인사를 나누었다.



그러는 사이 동창 한 명이 도착했다. 베이지 색 원피스에 깡마른 모습을 한 그녀 경희는 남편과 함께였다. 예나 지금이나 그녀는 마른 체형이다. 둘 사이에 아이가 없어서인지, 아니면 나이차이가 많이 나서인지 남편 향한 경희에 말투에 응석이 잔뜩 묻어있다. 한국인 남편과 살면서도 경희는 연변사투리 그대로 거리낌 없이 사용하고 있었다. 그런 경희에게 그녀의 남편도 연변사투리를 구사한다.  경희보다 더 중국음식을 좋아하고 더 중국을 좋아한다더니 실제로 보니 정말 그래 보였다. 사람 사는 모습은 비슷해 보여도 가까이에서 보면 이렇게나 다르다. 같은 국제커플이어도.




결혼식은 금세 끝나버리고 경희네 부부와  함께 연회장으로 갔다.

학교 다닐 땐 꽤 친했던 사이인데 왜 리 할 말이 없을까...

식사하는 내내 경희가 하는 얘기를 들어주고 장구 쳐주는데만 열중했다. 달리 할 말이 없었다. 남편 그늘아래 몸이 약한 스스로를 챙기며 살기에도 바쁜 그녀의 화젯거리는 자신의 건강이야기 말고는 딱히 없어 보였.


후딱 식사를 마치고 경희 남편은 차에 가있겠다며 자리를 피해 주고 그런 남편이 신경 쓰여 경희는 엉덩이를 들썩거렸다.


미혜는 그런 경희가 얄미워 한소리하며 더 있다 가라고 하지만 기어이 경희는 주섬주섬 소지품을 챙겨서 일어나고 나도 덩달아 부스스 일어났다.

혼자 남아있기엔 하객들 챙기느라 정신없는 미혜가 나때문에 더 신경 쓰일 것 같았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들 보내는 게 못내 아쉬워 미혜는 승강기버튼을 누른 채 내려보낼 생각을 안 한다. 결국 미혜가 중국 들어가기 전 8월 초에 다시 뭉치기로 하고 약속날짜를 잡고 나서야 손을 흔들며 환한 미소를 보인다.





경희와 헤어져 터덜터덜 전철역으로 향하는데 비는 그칠 기색도 없이 하염없이 내리고 우산이 작아서인가 어깨에 걸쳐 멘 핸드백에 사정없이 빗물이 흘러내렸다.

가방 안 사길 잘한 것 같다.

길가에 주차된 자동차유리에 비친 내 모습이 오늘따라 유난히 초라해 보인다.






#그런날 #기분 #별별챌린지 #글로성장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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