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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선복 Jul 27. 2023

아홉살 인생 1

나의 할머니


기차를 타고 꼬박 이틀을 달렸다.

기차 안은 더럽고 사람들로 꽉 차서 숨쉬기도 힘든데 할머니를 놓치지 않으려고 나는 안간힘을 썼다. 긴 시간이 흐르고 비몽사몽인 나를  할머니가 흔들어 깨웠을 때 차창밖으로 희미한 빛이 들어오고 있었다. 아침이 밝아오고 있었다.


이제 기차에서 내릴 거라고 했다. 할머니는 짐을 챙기고 나도 덩달아 내릴 채비를 했다. 주변이 소란스러운걸 보니 대부분 이 역에서 내리는 것 같다.

기차가 서서히 멈추고 나는 어른들 틈바구니에서 마구 떠밀리다시피 내렸다. 다행히 할머니 손은 놓치지 않았다.



역에서 나와 기찻길을 따라 쭉 걷다 보니 먼발치에 학교가 보였다.

"선아, 이제 여기가 네가 다닐 학교야. 잘 봐둬."

할머니의 말씀에 나는 유심히 학교를 살펴보았다.

전에 다니던 학교보다 훨씬 크고 좋아 보였다.

  


기찻길 건너 논밭길을 지나

할머니 등에 업혀 작은 강도 건너고 숲이 우거진 자갈길을 한참 걸어 작은 산동네에 도착했다.

 

"이제 다 왔다."


어느 집 키 작은 울타리 문을 열며 할머니가 말씀하셨다. 나는 할머니 뒤를 쫓아 쭈뼛거리며 그 집 마당에 들어섰다. 외양간 비슷한 창고를 지나 빛바랜 파란색 현관문을 열며 할머니가  큰 소리로 외쳤다.


"엄마, 아부지, 저 왔어요.."


할머니의 목소리가 가늘게 떨렸다.

나는 살며시 할머니 옆에  붙어 서서 방 안을 둘러보았다. 거실 한가운데 밥상이 놓여있었고 상을 마주하고 식사를 하던 두 어르신이 우리를 바라보고 계셨다.

나의 증조할아버지와 증조할머니였다.


"어머.. 그래... 왔구나."

 

수저를 급히 내려놓으시더니 증조할머니가 몸을 일으켜 허둥지둥 다가왔다.


"어떻게... 장례는 잘 치르고?"


할머니 손을  움켜잡으며 울먹이는 목소리로 물었다.

할머니는 대답 없이 고개만 끄덕이고 증조할아버지가 가까이 다가오더니 내 손을 잡으셨다.


"네가 영석이 딸이구나. 그래... 오느라 고생했다."


증조할아버지 손에 이끌려 밥상 앞에 앉았다.

할머니도 상에 마주 앉고 증조할머니가 부산스럽게 밥과 국을 퍼서 날랐다.


"어서 밥 먹자."


증조할아버지가  내 손에 숟가락을 들려주었다. 배가 몹시 고팠던 나는 천천히 밥을 먹기 시작했다.

할머니도 아무 말 없이 수저를 들었지만 이내 도로 내려놓고 숨죽여 울기 시작했다.

밥을 먹다 말고 나는 가만히 그 모습을 바라보았다.


"불효막심한 녀석! 새끼 둘이나 낳아놓고 어디 할 짓이 없어서 에미 가슴을 저 지경으로 만들어놔!

이 불효막심한 나쁜 자식!!"


화가 잔뜩 난 증조할머니의 목소리에도 켜켜이 울음이 섞여있었다.



(계속)


#할머니 #별별챌린지 #글로성장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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