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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선복 Feb 17. 2023

할머니의 찐빵

나의 소울푸드

학교 가지 않는 주말, 주방에서 달그락대는 소리를 들으며 이불속에서 꿈지럭꿈지럭 늑장을 부려본다. 비몽사몽 코끝으로 스쳐가는 냄새에 설마? 하고 이불을 살짝 젖히고 코를 벌름거려 본다. 다시 이불을 뒤집어쓰며 혼자서 실실 웃는다.

찐빵이다! 할머니가 찐빵을 찌고 계신다.

어젯밤 밀가루 반죽하는 걸 보고서도 그새 까먹고 있던 나는 아침부터 찐빵 익는 냄새에 흥분을 하고 있다. 이불속에서 혼자 흐뭇해다가 다시 깜빡 잠들었나 보다.


"이 선생, 이제 일어나야지!"


하는 목소리와 함께 할아버지가 내 코를 살짝 비틀었다. 귀찮은 척 할아버지 손을 뿌리쳐 보지만 나는 이 시간이 가장 행복하다.

커서 꼭 선생님이 되라는 염원을 담아 할아버지는 나를 이 선생이라 부른다. 아침마다 이렇게 깨워주는 사람은 할아버지가 처음이다. 할아버지는 할머니와 재혼한 지 2년 정도 된, 나한텐 새 할아버지지만 나를 끔찍이 사랑해 준다.


할아버지의 다정한 모닝콜로 기분 좋게 일어나 주방으로 향했다. 할머니는 가마솥을 활짝 열어젖혔다. 하얀 김 사이로 한 솥 가득 찐빵들이 모습을 드러낸다. 한 김 빠진 가마솥에 얼굴을 들이밀고 숨을 한껏 들이마시며 구수한 빵 냄새에 취해본다. 그런 나를 할머니는 머리카락 떨어진다 손사래를 치며 쫓아낸다.

밥상 위에 올라온 뽀얀 찐빵은 보기만 해도 기분이 좋아진다. 할아버지는 밥 대신 찐빵을 드시며 신문을 보고 나 역시 찐빵으로 배를 채운다. 할아버지는 연속 두 끼를 찐빵으로 드시더니 생목 오른다며 저녁부터는 밥을 찾으셨다. 자연스레 남은 찐빵은  내 차지가 되었다.​


주말 내내 책을 읽으며 간식 삼아 야금야금 찐빵을 뜯어먹는 재미란 이루 말할 수 없는 즐거움이었다. 그렇게 질리도록 먹고 나면 한동안 찐빵은 쳐다보기도 싫어진다.

그러나 할머니는 내가 언제쯤 다시 찐빵을 그리워하지는 잘 안다. 우울하거나 속상한 날, 내가 위로가 필요한 날, 할머니는 어김없이 밀가루 반죽을 하셨다.





어른이 되어 가끔 길거리에서 찐빵가게를 발견하면 나는 홀린 듯이 하얀 김을 내뿜는 가마솥 앞에 멈추어선다. 그리고 찐빵을 주문한다. 할머니표 투박한 찐빵보다는 덜 맛있지만 따뜻한 찐빵을 들고 집에 돌아오는 길은 무척이나 행복하다.

할머니, 할아버지가 살던 옛집을 떠올리며.... 가슴 따뜻했던 그 시절을 떠올리며 잠시 목이 메기도 하지만.


​​할머니가 사무치게 그리운 날, 그런 날은 나도 밀가루 반죽을 한다. 그 밀가루 반죽으로 무엇을 만들지는 천천히 생각해 보기로 하고 조물조물 하염없이 반죽을 치대 본다.

마음이 평온해진다.


할머니처럼 찐빵을 만들어볼까? 수제비를 만들까... 아님 칼국수?


무엇이든 상관없다. 그저 몰랑몰랑 반죽을 만지고만 있어도 내 그리움은 한결 견딜 만해지니까. 반죽을 숙성할 요량으로 비닐을 씌워 한쪽에 잘 놔둔다.

내일 아침에는 나도 찐빵을 만들어봐야겠다.




#별별챌린지 #글로성장연구소 #할머니 #소울푸드 #그리움 #찐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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