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몽

by 순임이



동생이 며칠간 머무르다 간 집은 왜 그리 휑하고 쓸쓸하던지. 나도 그만 훌쩍 어디론가 떠나고 싶었어.

더 이상 그 집에 살기 싫은데 삼촌이 무서워 아무 데도 갈 수가 없어. 어른들의 말을 거스르면 큰일 나는 줄 아는 나는 착한 애니까. 엄마, 아빠 없는 동안 나는 그렇게 살았어. 눈치 보기 바쁘고 아파도 아프단 소리 한번 안 하고 싫어도 싫단 소리 못하는 미련하게 참고 견딜 줄만 아는 그런 애늙은이가 되어버렸지.




어느 날부턴가 밤이 무서워졌어. 아빠.

미닫이문을 사이에 두고 윗방 아랫방으로 나뉘는데 난 아랫방을, 삼촌은 윗방을 주로 쓰는데 그래서 잠도 대체로 그렇게 잤거든. 근데 언제부턴가 삼촌이 아랫방으로 잠자리를 옮기는 거야. 처음엔 그러려니 했어. 겨울이면 가끔 춥다고 아랫목을 찾기도 했으니까. 그리고 내 잠자리랑 꽤 떨어져 있으니 크게 신경을 안 썼는데 언제부턴가 느낌이 이상한 거야. 항상 TV를 보다가 잠드는 버릇이 있는데 어느 날 문득 잠결에 이상야릇한 숨소리가 들려왔어. 무서워서 잠꼬대인 척 벌떡 일어나 앉았는데 멀찌감치 있던 삼촌 이브자리가 꽤 가까이에 와 있더라고. 도망치고 싶었지만 티를 낼 수가 없었어. 내가 오해한 걸 수도 있으니까. 다시 잠드는 척 누웠는데 그날은 밤새 뜬 눈으로 지새우다시피 했어.

다음 날도 그다음 날도 신경을 곤두세우느라 제대로 잠을 잘 수가 없었어. 짐짓 아무렇지 않은 척했지만 밤만 되면 몸서리치게 무서웠어.


그날도 일찍 잠자리에 들었는데 영 찝찝해서 견딜 수가 없는 거야. 결국 베개를 반대편에 놓고 평소와 다르게 거꾸로 누웠어. 내 딴엔 그게 방어였지. 티 안나는 방어. 그러고 누워서는 깜빡 잠이 들었나 봐. 며칠 동안 제대로 못 잤으니 꽤 깊이 잠들었겠지.

거친 숨소리에 놀라서 깼을 땐 삼촌은 이미 내 몸을 더듬고 있었어. 비명을 지르며 벌떡 몸을 일으켰지만 쉽게 벗어날 수가 없었어. 발정 난 성인남자의 달뜬 신음소리가 뜨거운 입바람과 함께 내 온몸을 훑고 지나가는 것 같았어.


"삼촌이 한 번만 가슴 좀 만져보자. 응? 삼촌인데 어때? 한 번만... 응? 딱 한 번만.."


나는 미친 듯이 악을 썼어. 울며 불며 한참의 실랑이 끝에야 간신히 그 징그러운 손에서 벗어날 수가 있었어. 그때 왜 집을 뛰쳐나가지 않았는지는 지금도 의문이야. 바보같이 겨우 한다는 짓이 윗방 침대로 가서 꺼이꺼이 우는 거였어. 뒤늦게야 제정신이 든 삼촌이 사과를 해왔지만 이미 내 눈엔 사람처럼 안 보였어.


아빠, 그 일이 있고 나서도 나는 계속 그 집에서 살았어. 그때 얼마나 무서웠고 얼마나 슬펐는지는 아무에게도 말할 수 없었어. 아무 일 없는 듯 평소처럼 지냈지만 그러느라 마음은 초주검이었지.


아빠 동생이 얼마나 뻔뻔한지 알아?

그 일이 있고 나서 얼마뒤 치통으로 밤에 잠까지 설칠 정도로 아팠던 적이 있나 봐. 엄청 아픈 척을 하는데 그러거나 말거나 난 신경도 안 썼어. 한 집에 있는 것만으로도 끔찍한데 그런 것까지 신경 쓸 정도로 아무렇지 않은 게 아니니까. 근데 그 인간이 뭐랬는 줄 알아?


"넌 삼촌이 아픈데 죽거나 말거나 신경도 안 쓰네."


어이가 없었어. 그게 사람이 할 소리야.


아빠, 난 삼촌이 소름 끼치게 싫었음에도 할머니 할아버지가 한국에서 돌아올 때까지 아무 일 없는 듯이 지냈어.

그리고 그 뒤로도 쭉 연락하며 살았어.

그 일이 마치 아무 일도 아닌 듯, 짐짓 대범한 사람처럼 속없이 그렇게 수십 년을 살아왔는데, 잊었다고 생각한 그때 그 일이 언제부턴가 자꾸 날 괴롭히기 시작하더라고. 그것도 마흔을 훌쩍 넘기고나서 말이야.

지금은 연락 안 해. 연락을 끊은 거지. 삼촌이랑 연락 닿는 게 싫어서 고모랑도 연락을 끊었어. 간접적으로라도 삼촌 소식을 듣는 게 싫어서.


이 이야기를 아빠한테 하는 건 아빠는 그래도 내 편을 들어줄 것 같아서야.

머리 검은 짐승은 키우는 거 아니라고, 기껏 키워놨더니 하는 본새가 그 모양이라고 삼촌은 지금도 노발대발인가 봐. 내가 연락 안 해서 무진장 서운한가 본데 그래도 직접 전화해서 따지지 않는 걸 봐서는 일말의 양심은 있는 거라고 봐도 되겠지?




아빠를 잃었을 때만큼이나 힘든 시간이었어.

지금은 다 지나갔지만.

다 지나가서 다행이지만.

아빠가 토닥토닥해주면 내 속에 남아있던 오래된 체기가 쑥 하고 내려갈지도 모르겠네.

그렇게 아무런 앙금도 남아있지 않았으면 참 좋을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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