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
나 지금 어디게? 맞춰봐.
음, 모르겠다고?
아빠, 잘 들어. 여기는 사이판이야 사이판.
바다 색깔 보여? 진짜 환상적이지 않아?
어떻게 저런 오묘한 색깔일 수가 있지?
난 이런 바다 태어나서 처음 봐. 아빠도 처음이지?
어?
어떻게 사이판 왔냐고?
어떻게 오긴 뭘 어떻게 와.
탈출했지ㅎㅎ 그 시골집에서.
거기 계속 있다가는 정말 꼼짝없이 시골귀신 되겠더라고.
아니 글쎄 할머니가 한국에서 돌아오면서 무슨 옷보따리들을 어마어마하게 갖고 왔는데 그 옷가지들을 정리하면서 하는 말이
"이건 너 밭일할 때 입으면 딱이겠다",
"이 모자 쓰고 일하면 얼굴이 하나도 안 타겠네."
"이 장갑 튼튼한 거 봐라. 한국물건이 이렇게 좋단다."
막 이러는데 아빠, 난 그때 결심했어.
여기서 탈출해야겠구나, 아무도 날 구해 줄 사람이 없구나, 정말 여기 가만히 있다가는 큰일 나겠구나.
그래서 막내 이모한테 SOS를 보냈지. 막내 이모는 사이판 봉제공장에서 몇 년간 근무하다가 계약기간이 만료되어서 돌아온 지 얼마 안 됐었거든. 이모한테 나도 사이판에 가서 돈 벌고 싶다고 했어. 시골에서 정정당당하게 탈출하는 방법은 그것밖에는 없겠더라고.
요즘 분위기가 그래. 한국이든 일본이든 사이판이든 브로커 통해서 노무송출로 몇 년간 일하다 오면 꽤 많은 돈을 벌 수 있거든. 그래서 기회만 닿는다면 너나 할 것 없이 외국 한번 나가보는 게 꿈인 시대가 됐어. 그러니 막내삼촌도 여기까진 관여하지 않더라고.
암튼 그렇게 이모의 도움으로 오게 되었어. 올 때 비용은 할머니한테 빌렸는데 열심히 갚는 중이야.
여기 오니까 너무 좋아, 아빠. 너무 자유로워. 눈치 주는 사람도 없고 지겨운 밭일 안 해도 되고.
일하는 거 힘들지 않냐고?
힘들긴 하지. 근데 아빠, 일한 만큼 급여가 나오고 대박인 건 여기는 2주에 한 번씩 주급으로 나와. 그것도 달러야 아빠.
2년 계약으로 왔는데 벌써 반년이 훌쩍 지나갔네.
참 막내삼촌 결혼식 한다고 편지 왔더라. 결혼식 비용이 좀 부족한가 보던데 보태줄 수 있는지 묻더라고.
기분이 좀 그래. 근데 뭐 할머니 돈을 내가 쓰고 왔으니까 부족하기도 하겠지. 급여 들어오면 보내주려고.
어쩌겠어 내 마음 편하려면 그렇게 해야지.
그래도 결혼한다니 얼마나 다행이야. 삼촌 결혼 못할까 봐 할머니 걱정이 태산이었는데.
노총각 히스테리도 만만치 않았거든.
아빠 졸리다. 어제 밤샘 근무했더니.
나 잠깐만 눈 좀 붙이고 올게.
아빠도 좀 자.
내 얘기 들어주느라 피곤할 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