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
난 이상하게 막내삼촌이 싫어.
할머니도 없는 텅 빈 집에 둘만 남겨놓고 간다는 게 말이 돼?
시내에 나가서 취직을 하려고 해도 안된다 그러고 큰삼촌이 데려가서 공부시켜 준다고 것도 자기가 나서서 거절하고. 말로는 작은 엄마 입장을 생각해서 그랬다고는 하지만 나로선 이해할 수가 없어.
막내 삼촌으로부터 벗어날 수만 있다면 작은 엄마 구박이 아니라 그보다 더 한 것도 견딜 수 있는데 말이야.
난 벌써 열아홉 살이야. 얼마든지 나가서 내 앞가림정도는 할 수 있다고.
왜 자기 마누라처럼 옴짝달싹 못하게 하는지 몰라.
그렇게 걱정되면 밭일도 시키면 안 되는 거 아니야.
하루 세끼 밥 하는 것도 어려운데 농사일도 무조건 같이 해야 하고 미치겠어 아빠.
논밭이 멀어서 꼭 자전거 태워서 가려고 하는데 난 그것도 너무 숨 막히고 싫어.
그걸 보고 동네노인들이 뭐라는 줄 알아?
아무개 색시 태워서 가는 걸 내 눈으로 똑똑히 봤다고.. 참 나.
아빠, 나 너무 우울해.
여기 시골엔 친구도 없고 할머니도 없고 이대로 정말 밭일이나 하다 썩는 거 아닌가 몰라.
새 할아버지는 한국에서 가끔 나한테 편지를 보내오곤 해.
"선복선생" 막 이러면서. 지금 선복선생이 우울해 죽기 일보직전인데.
희망이라고는 없어. 엄마 아빠 없이도 할머니 하나 믿고 잘 살아왔는데 그 할머니가 없으니 믿을 구석이 없네. 아니 차라리 믿을 구석이 아예 없어져버렸으면 좋겠어. 어쭙잖은 보호자 자처하는 막내삼촌 때문에 숨이 막혀 죽을 것 같아.
참, 여름방학을 맞아 림호가 왔어.
아빠랑 똑같이 생긴 아빠 아들.
잘 생긴 내 동생.
벌써 열네 살인데 아직은 애기 같아. 얘는 날 참 잘 따라. 우린 같이 살진 않았어도 만나면 그렇게 의지되고 좋더라. 삼촌과 둘이 지내기 너무 힘들었는데 마치 구세주가 나타난 것처럼 기쁘고 반가웠어. 아빠처럼 가리는 것 없이 뭐든 잘 먹어서 크게 신경 쓸 것도 없고.
근데 희한한 건 막내삼촌이 림호를 별로 안 이뻐해. 며칠은 그나마 괜찮은데 시간이 갈수록 눈치 주는 게 보여. 누굴 귀찮게 하는 것도 아니고 순하디 순한 앤 데 왜 그러는지 이해가 안 가.
봐봐. 일주일도 안 됐는데 너 언제 가냐는 식으로 자꾸만 애를 불편하게 만들잖아.
결국 일주일을 간신히 넘겨서 보내게 됐어. 별로 같이 논 것 같지도 않은데 벌써 보낸다고 생각하니 눈물이 나. 림호 따라 엄마네서 같이 지내다 오고 싶어도 엄마가 얼마 전에 재혼을 하는 바람에 그것도 여의치 않거든.
가기 전날 밤 애기같은 내 동생 내 옆에 나란히 이불을 깔아주고 누웠는데 왜 심술 어린 삼촌의 눈빛이 느껴졌는지 모르겠어.
아빠, 나 무서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