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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선복 Mar 01. 2023

남편에게 미안해하지 않기로 했다

오늘따라 왜 그렇게 짜증이 났을까...

남편으로부터 11번째 전화가 걸려오는 순간 짜증이 솟구쳤다.

아니지! 이 감정은 짜증이 아니라 분노라 해야 정확할 것 같다.

아무리 전업이라 해도 애들 개학준비에 이것저것 신경 쓸 것도 많은데 하나부터 열까지 시시콜콜 전화에, 문자에 미치고 환장하겠다.


접이식 의자 좀 봐달라는 쿠팡링크를 보내준 게 첫 시작이었다. 가게 주소로 주문을 하고 결제를 했다.

거래처의 대금결제에 관한 두 번째 전화는 해줄 말이 없었다. 몇 주째 가게에서 매입영수증을 챙겨 오지 않는 바람에 나는 영수증 코빼기도 못 봤다. 그러니 결제할 금액이 얼마인지 알턱이 있는가?


잠시 후 다시 전화가 걸려왔다. 어디 거래처에 얼마를 입금하라는 전화였다. 하던 일을 멈추고 인터넷뱅킹에 접속해서 여기저기에 이체를 했다.


네 번째 전화는 올해가 2023년이냐고 물었다.


그렇다고 대답했다.


"아 그래? 난 2022년인 줄..."


"아직도 2022년에 사는구나 당신은..."



다섯 번째 전화는 거래처에 입금했냐는 확인전화였고 여섯 번째 전화는 계산오류로 인하여 손님으로부터 더 받은 금액을 입금해 주라고 했다.



일곱 번째부터는 모르겠다. 뭔가를 끊임없이 확인하는 전화였던 것 같다.


마지막 통화는 저녁준비 하고 있는데 걸려왔다.


이미 짜증이 날대로 난 상태라 목소리가 곱지 않다.


"왜 또?"


"저번주 태민수산 거 결제 안 해줬어?"


"글쎄... 안 해준 것 같기도 하고..."


"뭐?"


남편 목소리가 고음이 된다.


"지금 하면 되잖아!"


신경질적으로 전화를 끊고 인터넷뱅킹에 또다시 접속을 했다.


....


이제는 정말이지 거래처영수증과 인터넷뱅킹을 보면 토가 나올 지경이다.


말이 좋아서 전업주부지 집에서도 끊임없이 가게일을 신경 써야 한다.

가게에서 쓸 마늘, 고추, 상추 포장작업도 전부다 집에서 해야 하고 가끔 걸려오는 손님 전화도 응대해야 하고 계산서 발행이며 거래처 결제와 같은 돈에 관한 모든 건 아직도 내가 하고 있다.


​이러니 가게에 출근할 때는 얼마나 힘들었을까... 생각만 해도 아찔하다. 다시 돌아가고 싶지 않은 날들이다.


​전업주부가 되고 나서 늘 미안한 마음에 집에서라도 내가 도울 수 있는 건 최대한 도와주려고 애써보지만 오늘 같은 날은 정말 지친다. 남편에게 미안한 마음이 조금씩 희미해지려고 한다.



가게에 나가지 않는 것만으로도 기뻐서 호들갑을 떨던 때가 엊그제인데 사람의 욕심은 이렇게 끝이 없나 보다.





#별별챌린지 #글로성장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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