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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선복 Mar 14. 2023

봄날은 간다

기억 저편의 봄

초등학교 4학년  어느 이었다.

학교 끝나고 집에 왔더니 일로 엄마가 와계셨다. 엄마는 혼자가 아니었다.

어떤 키 큰 남자와 함께였다. 

어정쩡하게 서있는 나에게 그 남자가 먼저 을 걸어왔다.

"안녕? 내가 너의 아빠가 되어줄게. 아빠라고 한번 불러래?" 

양복 입은 곱슬머리의 그 남자는 친절한 척 다가왔다. 엄마는 옆에서 멋쩍게 웃고 있었고 할머니는 어색한 분위기가 더 어색해질까 노심초사하셨다.


어떤 행동을 해야 할지 판단이 서지 않았다.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망설이다 무작정 그 자리를 피해 밖으로 나왔지만 막상 어디를 가야 할지 아무 생각이 나지 않았다.

나는 고작 굴뚝뒤에 숨는 것밖에 할 수 없었다.

누군가 뒤따라 나왔지만 굴뚝 근처까지 왔던 발걸음은 한참을 서있다가 돌아갔다.


'아빠라 한번 불러줄래?'굴뚝뒤서 가만히 되뇌어봤다.

구역질이 났다.






얼마뒤 엄마는 동생을 데리고 그 남자를 따라 다른 지역으로 갔다.

 어른들이 참 괜찮아 보인다던 그 남자는  동생을 엄청 구박했다고 한다. 결국 견디지 못한 엄마는 얼마 못 살고 다시 동네로 돌아왔다.

그 뒤로도 엄마는 주변 사람들의 소개로 여러 남자들과 만나고 헤어지기를 반복했그때마다 동네 사람들은 시끌벅적 말이 많았다.

 따분한 시골 마을에 그보다  재밌는 화젯거리  아마 없었으리라.


그리고

열 살 많은 노인회 회장할아버지와 재혼을  할머니는 무척이나 행복해하셨다.


나는 조금씩 가슴이 나오기 시작했고

나온 가슴을 감추고 싶어 할머니의 얇은 스카프로 꽁꽁 싸매기도 했지만  매듭 부분을 감추느라 자세는 부자연스러.  익숙해질 무렵 엄마는 속옷을 사다 주다.


가끔 엄마가 잘라준 머리가 맘에 안 들어 심통을 부리기도 하고 당황해하는 엄마를 보면서 약간의 짜릿한 쾌감을 느끼기도 했다.



내가 우울하든 슬프든 계절은 변함없이 찾아오고 시간은 아랑곳하지 않고 흘러갔다. 겨울에 적응할 즈음 봄은 찾아오고 부산스러운 봄이 좋아질 즈음 여름이 돌아왔다.

그렇게 또 하나의 봄은 갔다.









#봄 #기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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