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에 우는 아이
1990년대 어느 날, 볼이 만두같이 동그란 여자아이가 둘째로 태어났다.
아이에게는 몇 살 터울의 오빠가 한 명 있었고,
오빠와 달리 얼굴에 아무 문제도 없어 보였다.
부모는 몇 년 전 그날과는 달리 아주 안심했고,
서로를 향해 그것 보라며 나는 아무 문제가 없지
않으냐고 가볍게 탓만 할 뿐,
아기의 탄생을 축하하는 분위기였다.
아이는 어린이집에서 예쁜 드레스를 입고
노래도 몇 번이나 불렀고, 피아노도 쳤다.
준비물도 점심때 쓸 수저통도 깨끗하게
꼬박꼬박 잘 챙겨 가는 아이였다.
아침마다 이렇게 저렇게 머리를 땋기도 하고
풀어서 머리핀만 여우같이 예쁘게 달기도 하였다.
아이의 아빠가 실직했다.
아이의 엄마는 돈을 벌어오겠다며 갈빗집 불판을 닦으러 나갔다.
늦게 들어왔기에 아침에 일어나지를 못했다.
아빠의 어설픈 볶음밥과, 머리 묶기,
알림장에 있는 준비물도 먼저 말을 해야 챙김을 받았다.
아이의 엄마는 점점 더 늦게 귀가했다. 현관문을 지나칠 때 비틀거리기 시작했다.
갈빗집에 온 아저씨들 옆에 앉아서 술도 얻어 마시고
돌아갈 때 차비로 하라며 돈도 얻어왔더란다.
아이의 아빠는 점점 귀가가 늦어지고 집안일에 신경 쓰지 않는 엄마를 찾아서 갈빗집에 갔다가
그 광경을 보고는 불같이 화를 내며 그만두라고 하였다.
아이는 어느샌가 아빠와 함께 거실에서 잠을 자며
부모의 말싸움과 몸싸움을 알게 되었다.
또다시 비틀거리는 소리에 심장이 쿵쾅거렸다.
엄마는 아빠와의 격렬한 싸움 끝에 갈빗집 일을 그만뒀지만,
엄마의 지인이 하던 시장 입구의 주점에서 아빠가 화를 내던 일을 이어 나갔다.
새벽에 일을 마치고 귀가할 때 나던 비틀비틀하는 발소리와 안방 쓰레기통에 구토하던 소리,
그리고 연달아 들려오는 아빠의 한숨 소리.
아이는 그 소리에 아니, 심장 소리 때문에 새벽에 잠에서 깨곤 했다.
아이는 어릴 때 분유를 먹고 컸다고 한다.
배가 오래 불러서 밤에도 잠을 잘 잤기에 새벽마다 깨어나서 배고프다고 보채는
손이 많이 가는 아이가 아니었다.
키우기 쉬운 아이. 여아라서 더 귀여운 아이.
아이는 친가, 외가 통틀어서 막내였기 때문에
기억은 나지 않는 예쁨을 아주 많이 받고 자랐다고 한다.
어린이집에서 노래를 부르던 아이는,
엄마가 갈빗집을 나가던 유치원 시절부터는
준비물을 챙겨 오지 않아서, 수저통을 들고 오지 않아서,
운동복을 챙겨가지 않아서 유치원 선생님께 혼이 나며 자랐다.
엄마의 주점 출근은 매일이 되었고, 몸싸움도 더욱 격렬해지면서
아이의 새벽 기상도 계속되었다.
그리고 아이의 오빠가 화를 냈다.
부모의 싸움을 말리던 오빠가 주먹으로 냉장고를 내리쳤다.
움푹 팬 냉장고와 그만큼 부어오른 오빠의 손.
부모는 놀라서 싸움을 멈추고 집에 있던 파스와 붕대로 오빠의 손을 감쌌다.
울고 있는 아이는 내버려 둔 채.
아이의 오빠는 많이 아팠을까.
오빠의 이상행동을 본 후 아이의 부모는
결국 이혼했다.
원래도 아픈 손가락이 부어오르니 더 놀랐나 보다.
아이의 엄마는 서울에 사는 큰이모 집에 가서 가끔 전화했다.
아이의 아빠는 그마저도 탐탁지 않아 했다.
그래서 아이는 엄마와의 통화가 불편했다.
아빠의 한숨 소리 때문이었을까.
아이의 엄마가 집을 떠나고도 아이의 새벽 기상은 계속되었다.
아이는 자기도 모르게 엄마를 부르며 울었다고 한다.
아이는 기억하지 못했다.
반복되는 기상에 아이의 아빠는 잠을 자지 못하여
짜증이 나기 시작했고, 아이를 혼내기 시작했다.
아이의 새벽 기상은 울음을 뚝 그친 것처럼 멈추었다.
아이는 엄마의 소식을 기다렸다.
아이의 엄마는 조카의 선물을 보내듯이
아이를 위한 선물을 가끔 보냈다.
아이는 엄마가 보내준 빨간 체크 코트를 몇 년이고 다 해지고 팔이 짧아질 때까지 입었다.
아빠가 아닌 큰엄마와 시장에서 옷을 골랐기에
다른 집 엄마들도 이렇게 띄엄띄엄 선물을 주듯 옷을 사주는 줄 알았다.
큰엄마는 한숨을 쉬었다.
아이는 꽃무늬가 마음에 들지 않아도 예쁘다고 했다.
외식, 라면, 떡국, 김치찌개와 같은 고열량 음식에 길든 아이는 살이 많이 쪘다.
여리여리하고 몸집이 작은 큰엄마는
그런 아이에게 살이 쪘다며 타박했다.
아이는 움츠렸다.
큰 덩치가 조금이나마 작아 보이길 바라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