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별

인생 첫 사기

by 얀밍

큰엄마의 제사포기 선언 이후 아빠의 주도아래 나의 친가 살이는 계속되었다.

아빠 친구를 보증인으로 세워 학자금 대출을 받게 해 주던 오빠와는 달리,

나는 학자금 대출마저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아 겨우겨우 받았다.

학자금 대출 신청 기일이 지나 받지 못할 수도 있다는 학교 측의 말에 아빠는 주위에 돈을 빌리려는 생각도 없이

대학에 안 가면 안 되냐는 말을 했었기에 나는 더 필사적으로 대학교 학생과에 부탁에 부탁을 거듭했다.

대학생이 되었기에 당연히 용돈은 끊겼고, 아르바이트를 해야만 했다.

셋째 큰아버지께서 주신 대학 입학 축하금이 아니었으면 아르바이트를 구하기 전까지 어떻게 버텼을지 장담할 수 없었다.


빵집 아르바이트부터 시작했지만 계속되는 엄마놀이와 제사 덕분에 몸이 축나기 시작했다.

아르바이트 시작 3개월 만에 10년은 넘은 치질이 한계에 도달하여 수술을 위해 그만두었다.

어릴 때부터 툭하면 배가 아파 병원에 가보면 장이 변으로 가득 차있는데 나오질 않아 관장을 자주 했다.

과민성장증후군이라는 진단을 20대가 되어서야 받았다. 긴장과 스트레스 때문이라고 했다.

새벽에도 기상을 해야 할 정도로 긴장의 연속이었던 어린 시절에 비하면 조용한 세상에 살고 있는데, 어째서 병은 낫지 않는지 잘 모르겠다.

몸은 성인이 되었는데 내 정신은 여전히 그 어린 날의 새벽에 머물러 있는 모양이다.

퇴원 후의 집안일은 당연히 내 몫이었다.

그래도 새로운 꿈이 생겼다. 외국어를 전공하고 있었던 탓에 교환학생이라는 좋은 제도를 이용해 비교적 안전하게 외국에서 1년간 살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해외여행 한 번 해보지 않았기에 기대에 부풀어 휴학까지 하며 돈까쓰 집과 백화점에서 하루 12시간씩 아르바이트를 했다.

다리가 터질 듯 아파도 행복했다.


여느 때와 같이 제사상 사진을 찍어 모든 친척에게 보내면서 명절 인사를 드렸다.

아빠가 내게 쥐어준 친척전용 대바늘이었다.

콕콕 문자판을 두드리며 제사상 사진을 보내면, 그들의 마음도 콕콕 찔리길 바랐다.

고모께 인사를 드리니 고생이 많다며 서울 큰집 소식을 들었냐고 물으셨다.

첫째 큰아버지께서 몇 번의 사업 실패로 모든 재산을 탕진했다고 한다.

우리에게 베풀어주신 은혜 또한 경매로 넘어가 다른 집을 알아봐야 했다.

밖은 새순이 돋아 푸릇푸릇해지고 있는데 집안은 또다시 겨울이 찾아왔다.

이미 낙후된 동네에 살고 있었기에 근처에 월세를 알아보았다.

보증금 1000만 원에 월세 40~50만 원이 가장 무난했으나, 돈 천만 원도 없는 집안이었기 때문에 보증금과 이사비용을 구해야 했다.

엄마에게 전화를 했다. 천만 원만 빌려주면 안 되냐고 했더니, 돈이 없단다.

내가 분명 지난겨울에 200만 원짜리 토끼털 조끼를 사는 것을 봤는데.

욱해서 욕이 튀어나왔다. 필요 없으니 꺼지라고 했다.

오빠가 엄마를 찾아가 다시 부탁을 했으나 돌아오는 것은 엄마와 큰 이모의 싸움만 봤다는 소식이었다.

큰 이모가 엄마의 재산 대부분을 들고 불려주기를 하고 있으니, 큰 이모의 전화를 피할 수는 없었다.

10년도 넘게 목소리를 들어보지 못해 누구시냐고 물을 정도였다.

엄마 쪽 사람들이랑은 더 이상 연락하고 싶지 않으니 전화하지 마시라고 답을 드렸다.

큰 이모에게 누구시냐고 물었다는 이유로 엄마가 집 앞에 찾아와 문을 부술 듯 두드려댔다.

토끼털 조끼보다 못한 자식은 경찰을 불러 쫓아냈다.

손이 떨렸다.

내손으로 엄마와 외가를 끊어냈다.


보증금의 대부분은 아빠와 나의 보험금을 담보로 대출을 받았고, 나머지는 내가 아빠에게 빌려주는 형식으로 아르바이트 비용을 드렸다.

교환학생을 위해 모으고 있던 돈이었다. 교환학생을 갈 때에 돌려주겠다고 약속을 받았다.

겨우겨우 돈을 맞춰서 이사를 했다.

사람은 세 명인데, 방이 두 개 밖에 없었다.

당연하다는 듯이 오빠의 짐이 모두 작은 방으로 들어갔다.

멍하니 아무 말도 못 했다. 그냥 울기만 했다.

이삿짐 아저씨들 앞에서 소리를 지를 수는 없었다.

집도 내가 구했고, 보증금 일부는 내 돈이고, 대출도 내 보험금이었는데,

내 방은 없었다.


그럼 그렇지.


어느덧 1년 반이라는 시간이 흘러 교환학생 출국날짜가 두 달 앞으로 다가왔다.

아빠에게 보증금으로 드렸던 250만 원을 달라고 했더니 없단다.

언제 줄 수 있냐고 물었더니


영영 줄 수가 없단다.


인생 첫 사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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