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가 살이(3)
아이의 졸업식이란 무엇일까? 아빠는 오지 않고 오빠만 오는 졸업식이란 정말 썰렁한 행복이었다.
다른 아이들이 밀가루를 집어던지고 놀 때 아이는 오지 않는 아빠를 기다렸다.
분명 오빠의 중학교 졸업식에는 같이 갔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아이의 중학교 졸업식에는 [같이]라는 말이 없나 보다.
고등학교에 들어갔다.
아이의 역할에 공부가 가장 늦게 추가되었다.
어떤 것을 줄여야 하는지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았다.
아이는 공부를 가장 먼저 줄였다.
집에서 드라마 볼 시간이 생겼다.
야간자율학습 시간이 끝난 하루의 작은 방황이었다.
고등학교 2학년, 갑자기 누군가 말했다.
"@!!&^%#&@#^!*&#."
뭐라고?
고개를 이리저리 돌려봤지만, 누군지 알 수가 없었다.
수업 시간 중에 누가 이렇게 말하지?
"@!!&^%#&@#^!*&#."
아, 나한테만 들리는구나.
하지만 아이는 그 말을 들어줄 여력이 없었다.
아빠에게 말하자마자 졸업식 때와는 달리 시간을 내어 학교에 찾아왔고, 병원도 같이 가 주었다.
우울증이라고 하였다.
약을 먹으니 말하는 이는 자연스럽게 사라졌고, 멍해지려 하면 아빠의 큰 호통이 내리쳤다.
아이는 병의 포상으로 1학기 동안 야간자율학습을 빼고 비싼 운동인 검도를 배웠다.
우울은 무저갱이라고들 하지만 아이에게는 아가미였다.
아주아주 구멍이 큰.
9월, 태풍에 뒤 베란다에 뚫린 지붕 사이로 나뭇가지와 흙이 쏟아져 내려 하수구가 막혔다.
작은 방과 옆집과 연결된 곳에 물이 넘쳤다.
옆집은 호들갑을 떨며 아빠에게 전화했고, 그 전화는 곧 담임 선생님께로 이어졌다.
아이는 오후 청소 시간이 끝나자마자 부끄러움에 얼굴이 붉어진 채 집으로 달려갔다.
옆집 아줌마의 호통은 아이의 차지였다. 재빠르게 고무장갑을 끼고 하수구 깊숙이 손을 넣어 나뭇가지와 진흙을 긁어냈다.
물이 빠지고 작은 방에도 장판의 일렁거림이 수그러들기 시작하자 옆집 아줌마도 입을 다물고 사라졌다.
아이는 주저앉아 개를 끌어안았다.
온몸이 땀과 비로 범벅이었다. 하수구 냄새가 코끝에서 사라지질 않았다.
고등학생인 아이의 시간은 대학생인 오빠의 시간보다 헐값으로 매겨진 것을 깨달은 순간이었다.
어쩔 수 없음의 덫에 갇힌 순간이기도 했다.
그럼에도 1년 만에 병원의 권유로 약을 끊었기에, 모든 것을 다 해냈기에 별 대수롭지 않은 병에 걸린 아이였다.
포상도 끝이 났다.
무언가가 스쳐 지나간 1년이었다. 고등학교 3학년은 다시 엄마 놀이를 하며 보냈다.
야간 자율학습이 11시까지로 늘어도 놀이는 끝날 기미가 없었다.
하수구를 파던 아이는 졸업했고, 나는 지방 사립대에 합격했다.
오빠와는 같은 학교였고 사촌 언니, 오빠들 보다는 못 간 경우였다.
새해 첫 명절, 큰엄마는 여지없이 말했다.
형제 중 마지막으로 간 대학, 더 좋은 대학 가서 아빠한테 효도하면 좀 좋았겠냐고, 문을 잘 닫고 들어가야 했단다.
친척들 앞에서 또다시 시작된 지엄하신 말씀에 나는 그 옛날처럼 얼굴이 벌게진 채 입을 다물고 다음 날이 되어서야 울음을 터뜨리는 비겁한 짓을 했다.
아빠에게 내가 라면 물 하나 못 맞추는 큰엄마의 딸과 같으냐고 오빠랑 같은 대학에 갔는데 나만 왜 저런 소리를 들어야 하냐고 부질없는 말을 했다.
아빠는 왜 이렇게 예민하냐고 안타까움에 한 말을 그렇게 받아들이냐고 나를 탓했다.
그럼 그렇지.
제일 반가운 소식이 들려왔다.
계속되는 항암치료가 너무 힘이 들어 우리 집에서 지내는 제사마저 끝내자며 큰엄마에게서 온 두 번째 통보였다.
아빠는 제사 음식을 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할머니, 할아버지께 가족끼리 모여서 화목하게 지내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 더 큰 정성이라고 했다.
제사 음식을 해 본 적도 없는 아빠 입에서 [정성]이 나왔다.
죽은 이를 위해 산 사람을 기어이 제물로 바쳐야 [정성]이라는 단어에 만족이 스미려나 보다.
아니면, 시름시름 앓는 나와 큰엄마는 아빠의 가족이 아니거나.
큰엄마는 손윗사람이라는 무기로 무사히 가족이라는 덫을 빠져나갔다.
아빠는 시장에서 제사 음식을 구매해 제사를 지내자고 나에게 통보했고, 나는 끝없는 무간지옥에 다시 처박혔다.
시장에 장을 보러 가는 사람은 셋에서 둘, 그리고 하나로 점점 줄어들었다.
당연한 순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