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가 살이 (2)
초등학교 4학년, 아빠는 일자리를 구하지 못해 막노동에 뛰어들었다.
타지에서 일을 했기에 라면 한 박스, 쌀 한 포대, 김치 한 통을 사다 놓고 월급날에 집에 돌아왔다.
비상시에 쓰라며 5만 원을 서랍에 넣어두는 것도 잊지 않았다.
아이와 오빠의 주식은 라면이었다. 하루 두 끼, 국물에 달걀을 풀어 밥을 말아먹기도 하고,
면만 건져내어 고추장을 섞어 만든 비빔면과 국물을 따로 먹기도 했다.
한 날은 라면의 밀가루 냄새에 질려 간장 계란밥만 해 먹은 적도 있었다.
엄마 놀이는 라면에서 시작 됐다.
아빠가 없는 틈에 진짜 엄마가 왔다.
서울에 가지 않고 아이와 비교적 가까운 곳에 자리를 잡았단다.
엄마는 집 안 청소를 해주고 떡볶이에 소고기 장조림도 만들어주었다.
아빠를 위해 꾸역꾸역 다 먹어 치워야 했지만 맛있었다.
엄마가 만들어준 분홍 장미 잠옷도 엄마가 올 때만 입었다.
엄마가 갑자기 강아지가 키우고 싶지 않으냐고 물었다.
그렇다는 아이에 한마디에 강아지가 왔다. 엄마의 지인에게 시끄럽다는 이유로 버림받은 다 큰 개였다.
개는 아빠를 보자마자 짖지도 않고 꼬리를 흔들며 배를 보였다.
간식 없이는 만지지도 못하던 아이는 신기했다.
낯선 환경에 많이 짖고 물기도 많이 물었지만, 아이에게는 말 못 하는 동생이 생겼다.
아빠도 갑자기 생긴 개에도 혼을 내지 않았다. 잘 키우라는 말뿐이었다.
엄마 놀이의 역할이 하나 더 늘었다.
세 명분의 빨래, 집안 청소, 밤 실수를 하는 본인의 이불, 그리고 개 동생까지.
좀처럼 고쳐지지 않는 밤 실수에도 아빠는 혼을 내지 않았다.
아이도 아빠에게 잘못했다 말하지 않았다.
아이는 집에 제일 먼저 도착한다는 이유로 모든 집안일을 먼저 감당하는 존재가 되었다.
그래서 아빠의 다정하지 않은 침묵은 계속되었다.
큰엄마가 유방암에 걸렸다.
유방암에 걸리고도 몇 해 동안이나 제사를 지내던 큰 엄마는,
형제 그 누구도 먼저 그만하시라고 말리지 않자,
어느 명절 전날, 형제들이 모두 모인 자리에서 더 이상 제사를 지내지 않겠다고 통보했다.
거기에 크게 흥분한 아이의 아빠는 제사를 아이의 집으로 가져가겠노라 선언했다.
아이는 다음날 제기, 병풍과 함께 그 말을 들었다. 여기도 통보였다.
제사를 가지고 온 뒤 첫 명절, 각종 음식을 해 온 큰엄마는 그 옛날 본인이 관리하던 할아버지, 할머니댁이
아니라며 구시렁거렸다.
개 비린내가 난다며 화장실에서 구역질을 하기도 했다.
아이의 어설픈 엄마 놀이가 실패했기 때문일까.
아이는 움츠렸다.
오빠랑 아빠는 왜 항상 늦게 올까?
아이의 명절은 연휴 이틀 전부터 시작됐다.
학교를 마치고 오후에 도착하여 개를 애견호텔에 맡기고 추우나 더우나 환기부터 시켰다.
락스로 화장실부터 바닥까지 고무장갑 속이 땀으로 가득 찰 때까지 닦고 또 닦았다.
먼지가 쌓인 책장을 새 수건을 꺼내어 닦고, 돌바닥인 현관도 가볍게 물청소를 하여 묵은 때를 날려 보냈다.
청소에 썼던 걸레들은 모두 버렸다. 걸레니까 더러워도 된다는 법은 큰엄마에겐 없었기에 아이는 미련이 없었다.
큰엄마가 써주길 바라며 새 행주를 꺼내놨다. 보험 아줌마가 주고 간 노란 행주였다.
엄마 놀이의 심사위원들이 속속 도착했다.
큰 엄마들은 싸가지고 온 쌀부터 행주까지 본인들이 가져온 음식만 먹고 물건만 사용하다 갔다.
아니면 본인 손으로 다시 씻어서 사용했다.
제사만 짧게 지낸 후 제기를 씻어 엎어놓는 순간 모두들 각자의 집으로 흩어졌다.
제기의 물기를 제거하여 새 신문지에 싸 넣어놓고, 남은 제사 음식을 냉동실에 소분하는 것은
아이의 주도아래 아빠, 오빠 셋이서 했다.
아이의 살림이었다.
여느 때와 같이 신경이 곤두서고 아프더니, 몸살까지 났다.
이번 놀이도 실패였다.
어느 날은 시작도 전에 감기에 걸렸다.
그래도 청소하고 있는 아이를 말리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명절 제사는 한 번을 쉬는 법이 없었다.
아이는 지끈거리는 머리를 붙잡고 청소를 했다. 새 행주도 꺼내놨다.
아빠에게 말했다. 이번 제사만 안 지내면 안 되냐고.
이미 첫째 큰아빠가 출발하셔서 안된단다.
그럼 나는 다른 데 가 있겠다고 했더니 많이 아프냐 물으면서도 그것도 안된단다.
큰엄마가 집 더럽다고 나한테만 뭐라 한단 말이야.
"큰엄마가 왜 그럴까. 열심히 했는데...."
끝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