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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얀느 Aug 17. 2024

8월이 되면

 8월이 되면,

그리운 엄마를 만나러 간다.

비행기 타고 버스를 두 번 갈아타 걷고 걷다 보면 저 멀리 골목 끝에 붉은 벽돌집이 보인다.

집으로 향하는 길을 지켜주던 열녀비도 여전하구나.

모진 비바람을 이겨낸 무화과나무도 여전히 여기 잘 서 있구나.

길가에 엄마가 틈틈이 심어놓은 콩나무도 잘 자라고 있구나.

제자리를 지키면서 모두 잘 있었구나.

겨울에 왔던 붉은 벽돌집 딸이 여름이 되어 또 왔단다.

세상의 모든 풍파 당당히 견뎌내고 그리웠던 엄마를 보러 왔단다.

'엄마! 엄마!'

부푼 마음 숨기지 못해 목청껏 엄마를 부르며 달려간다.

한달음에 달려가 엄마의 작은 몸을 껴안고는

'보고 싶었어요. 그리웠어요. 엄마'

참으로 고단하고 서러웠던 뭍에서의 짐들이 훌훌 가벼워진다.

'보고 싶었어요. 참 그리웠어요.' 따뜻한 엄마의 품속에서 그동안 세상 시름 잊힌다.




 또다시 여름,

그리운 엄마를 만나러 간다.

비행기 타고 버스 타고 시내로 걸어 들어가다 보면 저 멀리 보이는 하얀 콘크리트의 병원.

까까머리에 아기같이 맑은 눈의 엄마가 나를 보며 말없이 기쁘게 웃는다.

'엄마, 보고 싶었어요. 보고 싶었어요. 정말로 그리웠어요.'

엄마를 꼭 안고 깊은 슬픔 토해낸다.

'집에 가자. 우리 집에 가자.'

목에 생긴 구멍에 목소리를 뺏긴 엄마의 입 모양을 읽어낸다.

'그래요. 엄마, 집에 가요. 우리 집에 함께 가요.'

언제 일어날지 모르는 일들에 대한 형제들의 염려, 호전되고 있지 않는 엄마의 병세까지 반대를 표하지만 결국 우리는 2주간의 외출을 허락받는다.




 그 여름의 8월,

엄마가 없던 시간을 열녀비도 잘 견디고 있었구나.

무화과나무도 모진 비바람에 지지 않고 제 자리를 지키고 있었구나.

붉은 벽돌집아, 엄마가 왔단다. 다시 못 올 줄 알았던 엄마가 돌아왔단다.

인적 끊겨 쓸쓸하던 집에 드디어 생기가 돈다. 동네 사람들이 하나둘 모여든다.

이게 꿈이냐 생시냐 엄마를 얼싸안고 눈물 흘린다. 기약 없이 떠나고서는 돌아오지 못했던 사람들을 애도하며, 모두에게 느닷없이 찾아올 죽음을 생각하며 눈물 흘린다.

우리는 값지게 하루하루를 보낸다. 함께 밥 먹고, TV 보고, 앞마당을 거닐고, 지나가는 동네 사람에게 손 흔들어주는 일상, 사소해서 더없이 소중한 하루를 보낸다.

다시 병원으로 떠나던 날, 이불 빨래를 걷어 압축비닐에 넣으며 생각에 잠긴다.

'엄마가 다시 이곳으로 돌아올 수 있을까?'

언제 다시 꺼낼지 모르는 이불을 보며 서글픔이 한 번에 밀려온다. 눈물이 방울방울 떨어진다.

반년 후 엄마는 병원에서 돌아가셨고 다시는 집으로 올 수 없었다.     




 여러 해 지나 또다시 8월,

붉은 벽돌집은 누군가의 소중한 집이 되었다. 시간은 기억을 휘발시키고 슬픔마저 희석시킨다.

내 마음 한편 아물지 않는 아린 마음은 어찌해야 하나. 150년 제자리를 지키던 열녀비는 알고 있을까.

오늘처럼 작열하는 태양 아래 서러운 마음 더욱 무거워지는 날에는

한달음으로 달려가 엄마를 꼭 껴안던 그때를 떠올려본다. 마음의 짐 한결 가붓해지던 그때를 기억한다.

까까머리 아기같이 맑은 눈을 가진 엄마가 나를 보며 말없이 기쁘게 웃던 그때를 떠올려본다.

따스함으로, 밝은 빛으로 마음 한편 자리 잡은 엄마를 시간도 어찌할 없겠지.

내 마음 한편 아린 마음에 엄마가 깃든다.

8월이 되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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