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월 초 리처드 할아버지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반가운 마음으로 전화를 받았는데 대뜸 이번 겨울에 가족여행 한번 오라는 것이었다. 당장 가고 싶지만 전달에 베트남 여행을 다녀온 터라 다시 여행 계획 세우기 부담스러웠다. 할아버지는 올 겨울에는 꼭 오라며 고집 부렸다. ‘정말 이상하네. 할아버지가 이런 적이 한 번도 없었는데 왜 이러실까?’ 생각하다가 혹시 할아버지 건강에 이상이 생긴 건 아닐까 걱정되었다. 내년을 기약했다가 그사이 큰일이 생기면 어쩌나 덜컥 겁이 났다.
나에게는 하와이 어르신 친구들이 있다. 내가 하와이에 어학연수 갔을 때 봉사했던 한국어 클래스의 수강자들로 한국 드라마를 좋아하던 할머니, 할아버지, 아줌마들이었다. 때는 겨울연가, 대장금, 천국의 계단 등 지금 봐도 재미있는 한국 드라마들이 줄줄이 나오던 2000년대 초였다. 그곳에서 지내는 동안 나는 그들과 각별히 지냈다. 내가 한국으로 돌아온 후에는 그분들이 자주 여행 오면서 20년 동안 우리 인연은 계속될 수 있었다. 세월의 탓으로 장거리 여행이 점점 부담스러워지는 것 같아 머지않아 어르신들 뵈러 하와이에 가보리라 생각은 하고 있었다. 아무리 마음이 젊고 활동적인 분들이라 해도 20년의 세월을 이길 장사는 없기 때문이다.
하와이 어르신 친구 중 한 명인 노라언니는 70대로 2년에 한 번꼴로 한국에 왔었지만 암 수술과 코로나로 못 오고 있고, 제인언니는 병환으로 더 이상 연락되지 않는다. 리처드할아버지는 80세가 넘었고 해외여행은 더 이상 다니지 않는다고 했다. 한 분이라도 건강할 때 만나고 와야겠다는 생각에 마음이 조급해졌다. 퇴근 후 가족과 의논했다. 남편과 큰딸은 못가겠다고 하여 둘째만 데리고 가기로 했다. 친구 선아에게도 함께 갈 수 있는지 물어봤다. 선아는 함께 공부했던 동갑친구로 하와이 어르신 친구들이 한국에 올 때마다 같이 만나는 소중한 친구다. 선아는 3박 정도의 시간을 뺄 수 있다고 했다. 3박만 있기에 조금 아쉽지만 함께 가기로 했다.
아침에 걸려온 할아버지의 전화 한 통에 하와이행이 결정되었다. 마침 호놀룰루에 신규 취항하는 항공사가 프로모션을 진행하고 있어서 소진되기 전에 얼른 예약했다. 2주 후 출발하는 것으로 운 좋게도 예상 비용 반값에 원하는 스케줄로 구입할 수 있었다. 다음날 할아버지께 결정사항을 전했더니 호텔 예약은 본인이 하겠단다. 부탁할 이유가 없었지만 막무가내인 할아버지를 못 이기는 척 예약만 부탁드리기로 했다. 딸과 나는 7박, 선아는 3박 여정으로 2주 후 출발이었다. 이상하리만치 일이 술술 잘 풀려 불안한 기분도 들었지만 살다 보면 이럴 때도 있는 거라며 스스로를 위안했다.
출발 날짜가 어느새 일주일 앞으로 다가왔다. 호텔을 알아봐 준다던 리처드 할아버지는 그동안 연락이 없었다. 메시지를 보내도 묵묵부답이었다. 기다리다 못해 전화를 걸었다. "리처드, 우리 일주일 후에 하와이 가기로 했잖아요. 호텔 예약해 준다고 했는데 연락이 없어서 전화했어요." "......... 너희들이 하와이에 온다고? 언제 오는데?" "......... 일주일 후예요." "내가 호텔 예약해 준다고 했니?" "아녜요. 괜찮아요. 걱정 말고 일주일 후에 갈 테니까 하와이 가서 만나요. 연락할게요." 전화를 끊고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일이 잘 풀린다 했는데 역시나.
리처드할아버지는 일주일 전의 일을 전혀 기억 못 하고 있었다. 그의 강권으로 계획 없던 여행일정이 생겼는데 본인은 기억 못 하고 있으니 혼란스러웠지만 이럴수록 더욱 다녀오는 게 맞는 것 같았다. 호놀룰루 도착해서 할아버지 연락이 안 되면 집으로 찾아가면 되겠다. 그동안 주고받았던 크리스마스 카드 봉투를 가지고 있고 가족끼리도 아는 사이니 집으로 찾아가서 뵈어야겠다고 다짐했다. 급하게 호텔을 예약하고 며칠이 지나 설렘 반 걱정반 호놀룰루로 출발했다.
습기를 머금은 호놀룰루의 더운 공기가 우리를 맞이했다. 도착하면 전화 달라는 리처드할아버지의 문자 메시지도 우리를 반겼다. 할아버지네 집까지 찾아갈 일이 없어져서 우리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다음날 만난 할아버지는 걱정했던 것보다는 좋아 보였다. 코로나 이후로 좋아하던 골프도 자동차 운전도 하지 않는다고 하셨다. 그동안 허리가 아팠었고, 이따금씩 기억에 문제가 생기는 것 말고는 괜찮다고 했다. 컨디션 난조로 함께 나오지 못했던 할머니와는 전화로 인사했다.
그동안 하와이에 여러번 방문했지만 친구 선아와 함께는 처음이었다. 20년의 세월을 껑충 뛰어 다시 만난 우리. 한창 젊었던 선아와 나는 40대 후반의 아줌마가 되었고, 은퇴생활을 막 시작하던 리처드 할아버지는 80대가 되었다. 시간이 이렇게 빨리 지나갈지, 사는 게 이리도 바쁘고, 정신없는지를 그때는 정말 몰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0년 후의 우리는 여기 하와이에서 웃는 얼굴로 서로를 마주 보고 있어 너무나 감격스러웠다.
선아가 있는 3일 동안 하와이의 어르신 친구들을 모두 만났다. 노라언니는 무릎 통증이 심해 계획했던 서울여행을 갈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했다. 5년 전 '유희열의 스케치북' 방청에 데리고 갔던 손녀 케일린도 함께 만났다. BTS 아미가 되었다며 행복한 미소를 보였다. 앨런, 메이린 언니는 손주들 돌보느라 바쁘다면서도 여전히 내가 모르는 따끈따끈한 한국 연예계 뉴스를 알려줬다.
알아온 세월은 길지만 자주 보는 사이가 아니었기에 어르신 친구들 한 분 한 분의 삶이 어땠을지 자세히 알지는 못한다. 다만 희로애락이 가득했던 그들의 삶에서 나는 그들이 좋아하는 것(喜)에 관련한 사람이었고 한국 여행을 오면 꼭 만나야 하는 사람이었다. 한편 그들은 내 삶에서 가장 행복했던 시기의 사람들로 인생의 가장 어두운 시기를 통과하던 때에도 그들로부터 삶의 위로와 희망을 얻곤 했다. 그렇게 우리는 서로에게 기쁨이고 위안인 존재였다.
가오리언니의 가게에서 아사이볼도 사 먹었다. 언니는 딸과 함께 블랙핑크 티셔츠를 입고 일하고 있었다. 큰 딸인 카일리는 일본 교토에 있는 대학교에 입학할 거라고 했다. 일본과 한국은 가까우니 서울로 놀러 오기로 했다. 우리 아이들과 연령대가 비슷하고 전에도 만난 적이 있으니 아이들끼리도 친하게 지낼 수 있을 것 같았다. 이번 여행으로 우리의 인연은 앞으로도 계속 대를 이어 갈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나이를 초월해 우리가 친구가 될 수 있던 것처럼 내가 그들의 자녀, 손녀들과 친구가 되고, 내 아이들이 그들과 친구 될 수 있으리라. 이름만 들어도 서로에게 반가운 사람이 되었으니 말이다.
선아를 보낸 후 나는 둘째아이와 매일 알라모아나 비치에 갔다. 파도가 잔잔하고 사람들이 많지 않은 한적한 비치에서 나는 한가롭게 책을 읽었고 아이는 원 없이 스노클링을 했다. 꿈에서나 그리던 여유롭고 유유자적한 하루하루였다. 하와이 여행을 가고 싶어 하지 않던 둘째는 이제 가장 좋아하는 여행지로 하와이를 꼽는다. 사람들의 환대, 쾌창한 날씨, 이국적인 해변, 유유자적했던 하루하루가 아이도 좋았나 보다.
며칠 전 리처드 할아버지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하와이에 또 언제 올 건지, 계획하면 알려달라는 전화였다. 그 말을 들은 둘째가 지금이 겨울방학이니 바로 가자며 난리가 났다. 음.. 둘째야 계획 없던 여행을 갑자기 가기가 쉽지 않단다. 여러 가지 고민이 필요하단다. 생각 좀 해보자꾸나. 아무튼 나도 하와이 여행 가고 싶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