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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르나

나의 첫 자동차와의 추억

by 얀느

르나와의 이별을 앞두던 그날이 생각난다. 하루종일 일이 손에 잡히지 않고 마음이 답답했던 날이었다. 르나를 보낼 때가 되었다는 것을 알았지만 아쉬운 마음은 도무지 다잡을 길 없었다. 하루 일과를 마치고 르나를 보러 갔다. 쌀쌀한 겨울 저녁 그녀와 함께 있으려니 우리가 함께 했던 지난 17년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그 길고 어두운 터널을 나는 르나와 함께 지나왔다. 내가 기쁘거나, 슬프거나, 힘들거나, 즐거울 때 모든 순간을 함께했던 나의 오랜 친구. 특히 깜깜해 앞이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던 나의 30대, 르나가 없었다면 나는 어떻게 살았을까. 그녀는 나에게 '자유'를 선물해 주었다.


결혼하기 전 회사에서 집까지 출퇴근이 불편해서 고민 끝에 자동차를 한 대 샀다. 조금이라도 저렴하게 사려고 추가 옵션 없는 기본 사양, 스틱기어로 결정했다. 단지 운전할 때 기름값이 적게 든다는 이유에서였다. 내가 가진 운전면허가 1종 보통면허라 구입에 문제 될 것은 없었다. '스틱 기어 그까짓 것 오토매틱이랑 얼마나 다르겠냐'며 운전하다 보면 익숙해질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 선택으로 17년 동안 열선 없는 스틱기어 자동차를 운전해야 했으니 그 자동차가 ‘르나’라는 애칭으로 불리던 베르나였다.

하얀색 베르나가 우리 집에 처음 오던 날을 기억한다. 동네 지인이었던 딜러 아저씨가 자동차를 집 앞까지 몰고 왔다. “얀느야. 내가 옆에 탈 테니 운전해서 동네 한 바퀴 돌아봐라. 자동차 상태 체크도 해야 하고 말이야.” 아저씨가 자동차 열쇠를 넘겨주었다. 눈부시게 하얀 자동차를 보며 감탄하던 나는 정말이지 당황스러웠다. "저보고 이 차를 운전하라고요? 저... 못하겠는데요." 즐겁게 상상만 하던 일이 갑자기 현실이 되니 머릿속이 새 하얘졌다. 옆에서 나를 한심하게 지켜보던 여동생에게 가슴 떨리는 운전 연수를 받고 드디어 도로에 나갈 수 있게 되었다. 약 한 달 만이었다.


한두해 지나 결혼하고 서울로 왔다. 친구도 친지도 없는 서울에 와서 아이 둘을 낳고 키우는 동안 크게 외롭다고 생각한 적은 없었다. 주중, 주말 없이 365일 바빴던 남편이 옆에 없어도 괜찮았다. 자동차에 아이들을 태우고 여기저기 잘도 다녔기 때문이다. 응급실, 병원, 마트 갈 때는 물론 도서관, 한강공원, 눈썰매장, 놀이공원, 동물원에 아이들을 데리고 다녔다. 아이들과 한번 나가려면 챙길 짐이 많았다. 유모차, 여벌 옷, 먹을거리, 간식, 물티슈, 물, 우산, 모래삽 장난감 등 트렁크에 짐을 싣고 여기저기 다니다 보니 나는 어느새 뭐든지 못할 것이 없는 억척아줌마가 되어 있었다. 어디든 갈 수 있고 무엇이든 못할 것이 없는 자유로운 아줌마.

하얗게 반짝이던 르나의 몸통 여기저기 상처투성이가 되었다. 내 급한 성격으로 주차장 기둥, 벽, 전봇대를 긁고 다녔던 탓이었다. 르나는 잔고장 없이 쌩쌩 잘 달렸지만 여기저기 움푹 파인 상처투성이 차를 몰고 다니기 부끄러울 정도가 되었다. 르나를 만난 지 17년째 되던 해였다. 그즈음 남편이 튼튼해 보이는 SUV를 갖고 싶다고 노래를 불렀다. 르나를 새롭게 도색하면 새 차를 구입할 필요가 없지만 몇 년만 더 타면 20년인 자동차를 타고 다니다가 도로 한복판에서 멈춰버리지 않을까 슬슬 걱정되었다.


결국 르나와 같은 회사에서 나온 하이브리드 SUV를 한 대 샀다. 새 차는 모든 면에서 르나와 대비되었다. 당연히 오토매틱 기어였고 터치와 버튼으로 조작이 해결되었다. 특히 후방카메라의 편리함이란! 백미러와 룸미러를 보지 않고 화면만 보고도 편하게 주차를 할 수 있었다. 열선이 있어 손따(손 따뜻)와 엉따(엉덩이 따뜻)가 가능했고 심지어 여름철 엉차(엉덩이 차가움)도 가능하단다. 17년 동안 이렇게 자동차 기술이 발전했다니 신문물을 처음 접한 옛사람들의 마음이 나와 같지 않았을까. 한편으로는 이 기술 발전의 끝은 우리를 어디로 데려다 줄지 두려운 마음이 들기도 했다.


여태껏 살아왔던 익숙한 관성을 유지하고 싶지만 주변 상황은 변화를 요구한다. 관성대로 살지, 변화를 수용할지는 가치에 따른 선택의 문제지만 가끔은 가치와 상관없이 단순히 합리성을 따져야 할 때가 있다. 주말에만 운전하는 집에 차 두대는 필요 없었고, 세금과 보험 문제도 있었다. 르나와 헤어질 결심이 필요했다. 남편이 중고차 어플로 알아보니 다음날 바로 르나를 가지러 올 수 있다고 했다. 차 상태를 보고 더 탈 수 있으면 수리해서 다른 나라로 보낸다고 했다. 르나는 잔고장이 없었으니 도색해서 다른 나라로 가면 정말 좋겠다. 내가 그녀에게 위안받고 힘냈던 것처럼 누군가가 르나를 만나 위로받고 희망찬 삶을 살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마지막으로 운전석에 앉아 지난날을 회상하다 보니 지난 17년이 파노라마처럼 스쳐 지나갔다. 그동안 불쑥 올라왔던 우울감과 화를 내 아이들에게 분출하지 않을 수 있었던 것도, 정서적으로 힘들었던 시기를 견뎌 자존감을 지키며 살 수 있던 이유도 모두 르나가 내 곁을 지켜주었기 때문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보이지 않는 삶의 굴레에 압도될 것 같을 때에도 그녀가 있어 훌쩍 떠나 마음을 추스를 수 있었다.


이제 르나가 떠난 지 3년이 지났다. 그동안 전하지 못했던 고마움, 가족과도 같던 그녀를 떠나보내야 했던 미안함을 이 글을 빌어 전하고 싶다. 그녀는 지금 어디에서 어느 누군가의 소중한 가족이 되어 있을지. 르나의 안녕을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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