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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빛나는 별 BTS

by 얀느

2020년 1월부터 시작된 코로나 바이러스가 전 세계로 퍼졌다. 확산 방지를 위해 마스크를 쓰지 않으면 버스도 탈 수 없었고 언제 어떻게 감염될지 몰라 공포스러운 상황이었다. 그해 11월 미국에 사는 시고모님께서 가족 단톡방에 BTS의 'Life goes on' 뮤직비디오를 올려주셨다. "요즘 얘네가 여기서도 인기를 끌고 있는 것 같더라. 요새 나온 노래라던데?" 소녀 팬들이 좋아하는 인기 그룹 중 하나가 방탄소년단이라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그 그룹이 BTS라는 것은 몰랐던 때였다. 머리가 희끗희끗한 미국 고모님과 소녀 팬들의 이미지가 오버랩되면서 영상이 궁금해졌다.


영어 관용구로 토끼굴(Rabbit Hole)에 빠졌다는 표현이 있다. 어떤 주제에 관심을 갖게 되어 알아내려는 노력이나 행동을 멈출 수 없는 상황을 나타내는 말이다. 'Life goes on' 영상을 본 그날부터 나는 그야말로 BTS 에 빠져버렸다. "오! 얘네들 꽤나 잘하는데?" 강도 높은 춤을 추면서 힘든 티 하나도 내지 않고 노래하는 그들은 프로 중의 프로였다. 영상을 찾아보다 보니 어느새 하루의 빈 시간은 BTS의 노래와 뮤직비디오, 공연 영상으로 꽉꽉 채워지기 시작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빈시간을 억지로 만들고 잠을 줄이면서 영상을 보는 날이 늘어난 것이다.


상징으로 가득한 뮤직비디오를 보고 무슨 의미인지 알고 싶어 해석 영상을 찾아보기도 했다. BTS 자체제작 콘텐츠, 예능, 여행기, 시상식 공연 등 볼만한 영상은 차고도 넘쳤다. 특별한 재능과 각기 다른 개성을 가진 일곱 멤버가 만들어내는 시너지는 대단했다. 2013년 데뷔하면서부터 인터넷 방송 플랫폼인 V라이브에 꾸준하게 영상을 업로드하여 공개했으니 그동안 축적된 영상자료가 방대했다. 인터넷 보급과 BTS의 전략이 잘 맞아떨어지면서 세계 각지에서 그들을 유심히 지켜보던 팬들이 많았나 보다. 내가 처음 빠져들던 때는 이미 세계인의 BTS가 되어 있었다. 평소 TV 드라마, 예능, 노래는 물론 남들 다 봤다는 천만 관객 영화도 관심 없었던 내가 어쩌다 40대 중반에 아이돌 덕질을 시작하게 되었을까?


첫 번째 이유는 그들의 뛰어난 스토리텔링이 한몫 차지한다. 탄탄한 스토리를 가진 책을 좋아하는 나에게 그들의 여정은 더없이 흥미로운 이야기였다. 책을 읽는 것은 일방적이고 정적인 활동인데 반해 BTS 덕질은 능동적인 활동이었고 그들을 알아가는 것이 즐거움이 가득했다. 두 번째는 꿈을 향해 고군분투하는 젊은이들을 응원하고 싶은 마음이 생겨서였다. 차근차근 꿈을 향해 나갔던 연습생 시절 영상을 보며 그들과 방법은 다르지만 꿈을 향해 한걸음 내딛는 청소년들 -내가 학교에서 만나는 중학생들과 우리 집 아이들-이 잘 자라서 BTS 멤버들처럼 서로에게 좋은 에너지를 주는 어른으로 자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그들 옆에서 응원하고 지칠 때 힘되어주는 어른이 되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내가 그들을 좋아하는 세 번째 이유는 그들에게서 진심 어린 위로를 받았기 때문이다. 사실 이 부분이 가장 크다. 코로나로 언제쯤 자유로워질 것인지 알 수 없던 시기여서 정신적으로 피로도가 높았다. 2020년 전후 몇 년간은 코로나뿐 아니라 내 인생을 통틀어 가장 매서운 폭풍이 불어닥치던 시기였다. 그리고 10년간의 경력단절을 끝내고 본격적으로 일을 시작한 것도 2020년이었다. 1월 공공도서관 주말 사서를 거쳐, 3월 초등학교 도서관 계약직 사서, 9월부터 교육청 교육공무직으로 중학교에서 근무를 시작하던 해였다. 원하던 일을 하게 되어 무척 기뻤지만 하루하루가 매우 고달팠다. 처음 근무하는 학교에서 무엇을 해야 할지 몰라 닥치는 대로 일을 시도했다. 처음이라 시간은 많이 걸리고 결과물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욕심은 있지만 잘하고 있는 것 같지 않아 많이 위축되었다. BTS를 보며 '이 젊은이들도 이렇게 멋지게 해내고 있는데 더 어른인 내가 잘 이겨내야 하지 않겠어?' 스스로를 위로하고 다독이며 그 시기를 견뎌냈다.


어느 날 첫째아이가 심각한 표정으로 이야기했다. "엄마, 공부를 해야 하는데 도무지 마음이 나지 않아요. 힘나는 응원의 말 한마디 해주세요." 아이가 기특하기도 하고 안타까운 마음이 들기도 하여 힘나는 멋진 말을 해주고 싶었다. 잠깐 고민하다가 말없이 스마트폰을 꺼내고 BTS의 'Born Singer'공연 영상을 틀어줬다. 노래를 들으며 영상에서 생생하게 전해지는 멤버들의 표정, 가사, 그들의 히스토리를 얘기해 주었다. 꿈을 향해 달려가는 딸에게 이보다 더한 메시지는 없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솔직히 두려웠었어 큰 소린 쳐놨는데 날 증명한다는 게 펜과 책만 알던 내가 이제 세상을 놀라게 한다는 게 I dunno 세상의 기대치와 너무 비대칭할까 봐 두려웠어 나를 믿어줬던 모든 사람들을 배신하게 될까 봐 무거운 어깨를 펴고 첫 무대에 올라 찰나의 짧은 정적 숨을 골라 내가 지켜봤던 사람들이 이젠 날 지켜보고 있네 항상 올려봤던 TV 속 그들이 지금은 내 밑에 주마등처럼 스칠 틈도 없이 한 번뿐인 연극은 시작 돼버렸지 3분 만에 증발한 내 3년의 피땀 피 터지는 마이크와의 기싸움 몇십 초일뿐이었지만 똑똑히 쏟아내 야 인마 니 꿈은 뭐야 나는 랩스타가 되는 거야..." (BTS ‘Born Singer’ 가사 중 일부)


나는 BTS의 노래와 영상들로 힘겨웠던 시기를 무사히 넘길 수 있었다. 그 사이 BTS는 더욱더 세계적인 그룹이 되어버렸다. 멤버들이 모두 군대에 갔고 또 시간이 흘러 올해 6월에는 완전체로 볼 수 있다고 하니 그날이 얼른 오기를 손꼽아 기다린다. 지금도 BTS 노래는 나에게 노동요이기도하면서 BGM이자 힐링송이다. 멤버 중 어느 한 명을 '최애'로 꼽지는 않는다. 멤버 한 명 한 명이 모두 빛나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그들의 성장과 함께한 나도 그들처럼 빛나는 삶을 가꾸었다. 지금 내 꿈은 은퇴 후 BTS 월드투어에 함께 여행하는 것이다. 그곳에서 나와 비슷한 또래의 할머니 ARMY 친구를 만나는 것도 꿈이다. 다른 언어와 문화를 가졌지만 힘들었던 시기에 BTS로 인해 힘을 얻었던 기억을 공유하는 친구를 만나는 상상, 그것만으로도 가슴이 벅차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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