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는 늘눈치를 봤다. 가난했고, 부모님의 이혼 후 할머니 밑에서 자랐다. 불쌍하게도 항상 심하게 주변을 의식했다.
막내여서, 신경성 복통으로 배가 자주 아파서, 언니, 오빠가 다행히 공부를 잘해서, 나는 꽤 자유로운(방치된) 유년을 보냈다. 30점짜리 산수 시험지를 숨겼을 때에도,
" 0점이어도 좋다. 아빠한테 보여는 줘야 한다."
하고 끝이었다.
그러나 여섯 살 딸의 뺨을 철썩 칠 때는,달랐다. 무리 지어 함께 놀러 간 곳에서 오징어를 나눠 먹지 않고 혼자 쥐고 있었다. 자식의 행동에 화가 났다기보다 지인들이 보고 있는 걸 견디지 못했다. 어릴 적 기억이 흐린 편인데 오징어 비닐을 쥐고 서 있던 바닷가, 분홍 원피스, 날카로운 따귀의 감각이 아직도 선명하다. 그런 일이 가능할 리가 없는데, 아빠는 누구에게나 좋은 사람이 되고 싶어 했다. 어릴 적 가장 많이 들어야 했던 말은 이런 것이었다.
" 사람들이 뭐라고 하겠니!"
아이에게 동화책을 읽어주는 일은 나의 어린 시절을 소환한다. 아빠는 '첫 번째 물고기'를 가져 본 일이 있을까.
멋진 어른을 만난다는 건
동화책 '라울의 첫 번째 물고기'는 꼬마 라울의 첫 판단의 순간으로 독자를 데려간다. 할아버지와 낚시를 하던 라울은 처음으로 물고기를 낚는다. 기쁨도 잠시, 그들의 뒤에서 이를 보고 있던 생선 요리 레스토랑의 손님들은 물고기를 놓아주라며 소리치기 시작한다. 물고기 요리를 먹고 있으면서 동물 학대를 외치는 고매한 어른들이란. 물고기의 목에 칼을 그을 것인가, 놓아줄 것인가. 어린 라울은 어쩔 줄 몰라 불안해하며 망설이고, 할아버지는 그런 손자에게 말한다.
"이 물고기를 잡고 싶으면, 지금 해도 좋아. 네가 잡은 물고기란다.
이 물고기의 생명은 네가 정하는 거야. 사람들의 말에 신경 쓰지 않아도 돼."
" 저 사람들의 말에 기죽지 알아도 돼. 네가 잘한 거야. 이건 네가 처음으로 잡은 물고기잖아."
주변의 야유 속에, 라울은 물고기를 잡기로 결정한다.
누구나 첫 번째 물고기가 있었다.
라울에게는 물고기, 그리고 아빠의 어린 시절에는 무엇이 있었고, 어떻게 빼앗겼을까. 아빠는 사랑받고 크지 못하여 평생 보이는 삶에 집착했다. 타인의 평가가 너무나 중요해 온 가족의 원망을 사면서도, 한 순간도 세상의 눈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만약 내가 라울과 같은 상황이었다면 아빠는 무척 곤란해하며, 물고기를 놓아주고 굿걸이 될 것을 종용하였을 것이다. 기다려주지 않았을 거다. 재밌는 것은, 그리고는 수산시장에 나를 데려가 물고기를 마음껏 고르게 하였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아니면 사람들이 없는 곳에서 낚시를 다시 하고 잡은 고기를 회까지 쳐주었을지도.
아빠와 나의 성장기가 그러했던 것처럼, 모두가 꼬마 라울같이 지혜로운 어른을 만나지는 못한다. 우리 같은 부류는 스스로 판단하고 결정하고 감당해보는 경험을 스킵하고 대충 어른이 됐다. 좋은 어른이 있어주지 않았다. 대신 그런우리가 만날 수 있는 것은 괜찮은 어른이 될 수 있는 '나' 일 뿐이다. 그것은 선택할 수 있다.
아이에게 결정의 순간을 맡기는 일은 일상 곳곳에서 찾아온다. 그럴 때면아이에게 나은 길을 알려주고, 궂은 길은 피해가게 해주고 싶어 부르르 떠는 나를 본다. 상처받게 하고 싶지 않다. 사랑하기 때문에. 그럼에도 온전한 물고기를 줘야 함은 안다. 맛있게 양념한 생선 요리를 갖다 바칠 게 아니라.
언제나 주는 것보다 참는 것이 힘들다. 아이가 겪어야 할 것을 내가 대신 겪어줄 수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