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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얀얀 Nov 02. 2023

택시 기사님이 매너를 숨김




아파트 이름이 이게 아닌데~
그 아파트는 ○○지. 무슨 거기가~
거기는 예전부터 ○○라고 우리가 다 알고 있는데.


주 2회 택시를 이용한다.

운전고자인 나는 픽업 같은 걸 할 수 없어서, 아이의 수업이 있는 날에 택시를 타고 있다. 주소검색으로 아파트이름을 입력했고, 예약한 택시를 탄 것뿐인데, 이 기사님을 딱, 만나게 된 것이다.


하하핫. △△역 옆에 그 아파트 맞죠?
초등학교 옆에 있던 그 ○○


택시 탄지 1분 만에 기사님 혼자 즐겁,

나는 슬슬 거북하다.

그리고 쐐기를 박으신다.


이름 왜 바꿨대요?
하핫. △△역 아파트~ 하하핫~




내가 살고 있는 아파트가 이름을 바꾼 건 1년 전쯤이다.

GTX 정차역이 되 집값상승을 기대하며 인근의 아파트들이 이름에 △△역을 붙기 시작했다. 리 아파트는 역과 가장 가까운 아파트이기에 네이밍 변경작업은 당연한 수순인 듯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던 기억이 난다. 런데 지금 웬일인지 이와 같은 당황스러운 순간을 맞닥뜨리고 있다.


도대체, 어느 부분이  기사님께 재미있는 것일까.



말을 하지 않는 편을 택하기로 다. 집안일을 두 시간 한 후 아이의 수업이 끝나기를 기다리는 동안 쇼핑 겸 장보기로 한 시간 반쯤을 걸었던 터라 피곤했다. 유쾌하지도 않은 대화를 나눌 생각이 없 창밖으로 을 돌렸다. 불쾌한 마음을 털어낼 겸 창문을 조금 열어 공기 바꾸었다.


하핫. 근데, 아파트 이름은 언제 바꾼 거예요?


와, 진짜.

스스로 묻고 답하고 잘하시더니 기어이 답을 이끌어 낼 생각이신가 보다. 매너만 숨긴 것이 아니라 눈치도 꽁꽁 싸놓으셨다.


 뜸 들이고 입을 다.


작. 년. 에. 요.


원하는 답을 드리고 난 후 바로 아이에게 말을 건넸다. 과제는 없느냐, 수업은 재미있었냐, 수업 파트너인 한 살 많은 형은 오늘 왔더냐 등 굳이 택시 안에서 묻지 않아도 되는 질문을 쏟아놓는다. 아이는 핸드폰 게임에 빠져 건성으로 네, 네, 거릴 뿐이다.

기사님은 더 이상 대화를 시도하지 않았지만 하차하는 순간 부러 동네를 둘러보며 웃어 보이는 걸 잊지 않았다. 


사진출처 : 픽사베이


보통 어떤 서비스 평가라도 '매우 좋음', 별 다섯 개를 누다. 사람상대 하는 일이 피곤하고 어려우며, 나는 절대 감당할 수 없음을 인생을 통해 배워왔기에 웬만하면 그렇게 한다. 다가 나는 일생 일하러 가기 전에 간하고 쓸개는 집에 걸어두고 나갔다는 우리 아빠의 딸이 아닌가. 스팸, 광고전화를 받아도 기계음이 아닌 이상 "끊겠습니다." 하고 끊어왔다.


택시에서 내리고 기사님에 대한 평가를 해달라는 알림이 왔다. 평소처럼 별 다섯 개를 얼른 누르면 되는데 괜히 화면을 들여다보기만 한다. 잠시 후 나는 X를 터치하 평가화면을 없애버렸다.


스스로를 상당히 높게 평가해 왔던 것 같다.

아파트 네이밍 변경 투표에 찬성했고, 도색 작업마저 끝났을 때 한결 집이 더 '있어' 보인다고 느낀 것을 선명히 기억한다. △역 아파트로 이름을 바꾼 이유는 기사님도 알고, 나도 안다. 굳이 물어 들춰야 하는 속내?이라고 생각하는 내 마음이 불편으로 이어졌다.


그동안의 별 다섯 개는 그저 그분들의 공이었던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마음으로부터 인정하는 순간이었다. 사실은 작은 언짢음에 반응해 버리는 소심한 인간이 나인 것이다. 혼자 꽤 너그러운 사람인 줄 정말로 대착각을 하였나 보다. 평가창을 닫아버리기 전에 능글능글한 웃음소리가 떠올라 별 하나나 두 개를 클릭할까도 잠시 고민했다.


나는 속이 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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