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구, 축구, 야구를 두루 거쳐 배구의 세계에 흠뻑 빠진 나는 남자배구 국가대표팀의 경기를 티브이로 보고있었다. 세트 스코어 2대 2 접전, 마지막 5세트, 승리의 여신은 누구의 손을 들어줄 것인가! 이러고 있는데,
정규방송 관계로 남자배구 국가대표 경기는 여기까지 중계하도록 하겠습니다.
오늘도 시청해 주신......
또야. 한두 번 당한 게 아니다.왕왕당했다.저 멘트가 나오면 서둘러 리모컨의 위치를 파악해 몸을 날린다.
빨리 스포츠채널로 돌려야 해. 오십몇 번, 육십몇 번 인가. 흐름이 끊기기 전에 이어 봐야 한다고. 오늘이 어떤 날인가. 국가대표 경기란 말이다. 축구 국대 경기가 막판에 끊기는 거 본 적 있는가. 없지?
방송국 놈들,축구는5분 남겨두고 중계 종료하는 패기 없잖아.
평소처럼 재빨리 리모컨을 잡아들고 스포츠 채널을 탐색하기 시작했다. 그런데이게 웬일인가. 안 한다. 스포츠 채널에서도 안 해준다. 멘붕이 왔다. 지금 몇 대 몇이냐고. 최애김상우 선수 속공 성공했냐고.아아.
분을 삭이지 못했다. 배구팬으로서참을 수가 없잖아. 당장 방송을 봐야 했다.스마트폰으로 경기 결과를 검색할 수 있는 편리한 시대가 아니었다. 얼마나 중요한 정규방송이 기다린단 말인가. 내가 확인할 테다. 아침에 아빠가 보고 던져둔 신문 뭉치를 사납게 집어 들었다. 그때 눈에 딱 들어온 것은,
편성국 전화번호 땡땡땡 - 땡땡땡땡
이거다. 편성국에 전화를 해야겠다. 도대체 내 배구 경기는 어떻게 되고 있단 말인가. 이 부당함! 터질 것 같은 마음으로 번호를 눌렀다.
여보세요. 제가 시청자인데요. 지금 배구 국가대표 경기가 도중에 방송 종료되었어요. 아니, 평소에도 그러시더니, 딴 경기도 아니고 국가대표 경기를 이렇게 딱 끊으시면 어떻게 해요?
젊은 남자로 기억한다.
다른 스포츠 중계랑 차별하는 것인가요?프로경기 때에는 적어도스포츠채널에서 이어 해줬잖아요, 무려 국가대표 배구 경기인데끝까지 방송을 안 해 주는 이유는 무엇이죠?중계 보던 사람은 뭐가 되나요?응답하라 응답해......
이제와 생각해 보면, 그는 내 장황한 말들을 어쩌자고 그리 잘 들어준 거야. 중간에뭔가 잘못 흘러가고 있는 듯한 서늘한 느낌이 왔다.어떡하지, 싶은 그 느낌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