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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러클양 Nov 21. 2017

마라의 죽음

장 폴 마라: 대혁명이라는 성전의 고귀한 순교자

이 글에서 다루는 작품은 자크 루이 다비드의 대표작 중 하나인 “마라의 죽음”이다. 이 작품은 루브르 미술관에서도 사람들이 많이 몰리고 인기가 있는 작품인 “황제 나폴레옹의 대관” 등이 위치한 신고전주의 회화실이 아니라 쉴리관 3층에 위치한 프랑스 회화실에 소장되어있는 까닭에 사람이 많지 않았다.

장 폴 마라는 스위스 태생의 프랑스인으로 내과의사이자 저널리스트였고, 당통, 로베스피에르와 함께 프랑스 대혁명기 산악파(자코뱅파) 지도자 중 한 명이었다. 다른 자코뱅에 비해 과격하다고 하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라는 “죽음의 천사” 루이 앙투안 레옹 드 생쥐스트만큼은 아니었다.

자코뱅파의 지도자로서 마라는 많은 업무를 처리했는데, 지병인 피부병으로 인해 하루의 많은 시간을 욕조에 몸을 담근채 업무를 봤다고 전해진다. 자코뱅파의 지도자로서 과격한 정책을 추진한 마라는 청원인을 가장한 지롱드파의 암살자 샤를로트 코르데에게 암살당하는데, 1793년 7월 13일, 그의 나이 50살때다.

자크 루이 다비드는 마라의 암살을 대혁명이라는 성전에서의 순교로 미화했으며, 마라는 이상적인 순교자의 모습으로 미화되었다. 욕조에 앉아 암살당한 마라는 암살당한 사람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나도 평화롭고 고요한 인상이며, 피부병을 앓은 사람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깨끗하고 하얀 피부를 보여주고 있다. 펜을 쥔 팔은 자연스럽게 늘어졌고, 왼쪽 손에는 생의 마지막 업무인 샤를로트 코르데의 이름이 적힌 종이를 여전히 쥐고 있다. 마치 죽는 그 순간까지 대혁명이라는 성전의 사소한 업무까지 최선을 다한 순교자답게.

장 폴 마라는 암살당하는 그 순간까지 업무를 봤고, 암살당함으로써 프랑스 대혁명의 순교자로서 이미지를 갖게 되었다. 같은 자코뱅의 지도자인 막시말리앵 드 로베스피에르나 조르주 당통이나 앙투안 레옹 드 생쥐스트가 공포정치로 인해 마지막에 악명을 남기며 죽은 것과 대비된다.

양 웬리는 “암살당하는 사람은 암살당하지 않아도 역사에 이름을 남기는 업적을 남긴다. 그러나 암살자는 오직 암살을 통해서만 역사에 이름을 남길 수 있다”고 말한 바 있다. 장 폴 마리와 샤를로트 코르데의 관계가 그 대표적인 예가 아닐까.

그리고, 무엇보다, 자신이 속한 파의 지도자인 마라의 죽음마저도 프랑스 대혁명의 프로파간다로 그린 자크 루이 다비드의 정말 “악마적인” 재능이 놀라울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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